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린 지난 23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본관 앞에 주차된 커피차로 유니폼을 입은 병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퇴원환자가 감사의 마음으로 보낸 통상적 커피차라고 하기에는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됐다. 차를 향하는 이들의 손에는 옷이, 돌아갈 때는 커피가 들려 있었다.
모종의 거래현장에 호기심이 발동해 다가가니 ‘기부 & Take’라는 플래카드 표어가 눈에 들어왔다. 상단에 위치한 ‘지구와 함께하는’이라는 부제를 보고서야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랬다. 고려대학교의료원이 병원계 최초로 시도하는 유니폼 재탄생 프로젝트, 일명 ‘PET 화학재생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현장이었다.
이 사업은 고려대의료원이 지속가능경영 일환으로, 플라스틱 사용에 따른 생태계 파괴 심각성을 알리고 의류폐기물이 가져오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취지로 기획됐다.
고려대의료원은 안암·구로·안산병원 등 산하 모든 병원에서 지난 15일부터 23일까지 착용하지 않는 업무복을 수거했다. 3개 병원에서 무려 1톤이 넘는 유니폼이 수거됐다.
대상 유니폼은 간호사복, 조무사복, 수술복, 일반업무원복 등 폴리에스테르 90% 이상인 9개 종류의 일상복 전체다.
폐의류로 버려지던 PET 소재 유니폼들은 화학재생 공정을 거쳐 12월까지 새로운 단일소재(모노머트리얼) 유니폼으로 제작된다.
병원계 최초 유니폼 재생 사업에는 전세계 친환경 사업부문 연구개발 분야에서 독보적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코오롱 미래기술원이 동참했다.
코오롱 미래기술원은 고려대의료원에서 전달받은 폴리에스테르 성분 의류를 테레프탈산(TPA)과 에틸렌글리콜(EG)로 분해하는 ‘PET 화학재생’ 기술을 구현한다.
이후 코오롱 인더스트리 FnC가 실을 엮어내 직물은 만드는 과정을 포함해 가공, 봉제 등의 업무를 맡아 ‘친환경 미래병원 유니폼’을 만들어 낼 예정이다.
코오롱은 업사이클링 기반 패션 브랜드 ‘레코드(RE;CODE)’를 론칭하며 친환경 패션 브랜드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간 버려지는 의류를 재가공하는 일종의 ‘패션 리사이클링’ 사례는 있었지만 이번 사업은 수거한 옷을 순수한 원료 상태로 만드는 화학 재생 과정을 포함하고 있어 차별성을 띤다.
이후 실을 뽑는 ‘방적’과 실로 천을 짜내는 ‘직조’ 등을 포함해 의류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수행한다.
고대의료원이 코오롱과 협력하는 병원 근무복 화학 재생사업은 국내외 어떤 병원에서도 추진된 사례가 보고 된 적 없는 의료계 세계 최초 프로젝트다.
의료원은 이번 사업이 석유 원료 사용량을 줄이고 의류폐기물 소각과 매립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지구와 함께 하는 기부 & Take 캠페인’이라 명명했다.
다만 유니폼을 반납한 모든 직원에게 친환경 유니폼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첨단기술에 복잡한 공정이 필요한 만큼 총 제작되는 유니폼은 10벌 내외다.
제작비용만 놓고 보면 수 백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상용화보다는 병원 유니폼의 친환경 재생이라는 상징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의료원은 오는 12월 새 유니폼 제작이 완료되면 상징성을 담아 각 병원에 소량씩 제공하고 기념행사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환경을 생각하는 생명존중 가치와 인류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국내 최고 사회적 의료기관을 구현해 내겠다”고 말했다.
안효현 사회공헌사업실장은 “탄소중립 실천을 이어가고자 기획한 이번 캠페인이 자원 순환의 친환경적 및 경제적 가치가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