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 강행으로 의료대란이 심화되고 있다. '고리디우스 매듭'처럼 꼬여 있는 의정갈등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전공의들 요구 수용만이 해법"이라고 민복기 대구광역시의사회장[사진]은 강조했다. 지난 4월 1일부터 회장 임기를 시작한 그에게 의대 증원 문제를 비롯한 의료 현안 및 의사회 운영 계획 등을 들어봤다. 민 회장은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피부과 전문의로,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대구 코로나19 대책본부장으로 방역을 맡았다. 이어 대구시의사회 수석부회장, 대한의사협회 총선기획단장, 대선기획단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편집자주]
Q. 회장 당선 이후 주력 회무는
우선, 내부 단합과 조직력 강화를 위해 몇 가지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번 집행부 임원진에 개원가는 물론 대학병원, 종합병원 등 다양한 대표자를 포함시키고, 여의사회와 20~40대의 청년의사 비중도 늘렸다.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했다. 또한 전공의, 의대생과 병원, 대학 간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기적인 교류 프로젝트와 학술대회 등도 추진 중이다. 더불어 의대생들과 학생 의료봉사단 등 다양한 모임으로 소통하면서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공의나 의대생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Q. 의대 증원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다.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인데
일본의 사례처럼 점진적으로 추진해 교육 수준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증원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갑자기 50% 이상 증원하는 것은 부작용이 많이 생길 수 있어서 반대한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것은 필수의료와 함께 지역의료 회생이 목표다. 그러나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서는 지역 통합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대구와 경북, 광주와 전남이 통합되면 같은 권역 내에서 지역의료를 돌볼 수 있어 의료시스템이 강화될 수 있다.
Q. 일본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일본은 1973년 전국 모든 광역 지방 단위에 의대를 설치한다는 내각 결정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의대 정원 증원이 이뤄졌다. 그러나 10년 후 공급 과잉 우려가 제기되면서 1982년부터 20여년간 점진적으로 의대 정원을 줄였다. 그러다가 2006년 고령화 사회로 전환되면서 의료수요가 늘었다. 지방의료 공급 부족 문제 등이 생기면서 2008년부터 다시 증가됐다. 2018년 후생노동성 산하 의료종사자 수급 관련 검토회의 의사 수급 분과회에서 2028년 이후 의료 서비스 공급 초과 발생 예측치가 나오면서 2019년에 의대 정원을 제한하기로 했다.
Q. 의대 정원 결정을 의사 수급 분과회가 전담하는지
의사 수급 분과회에서 논의한 결과를 최종적으로 내각이 추인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분과회 참가자는 총 20명으로, 그중 10~14명이 임상 혹은 의료행정 경험이 풍부한 일본의사회 소속 의사다. 의사들이 분과회를 통해 정부와 협의하고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하고 있다. 일본 의대 정원 확대 과정의 핵심은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것, 그리고 의사들과 협의한다는 점이다. 단계적으로 예산이 얼마나 들며, 어떻게 자금을 충당할지 국민과 의사들을 설득하며 이뤄진다.
"정부, 전공의 7대 요구안 수용만이 사태 해결 가능"
"전문의 중심병원 계획, 지역의료에 대한 무지의 발로"
"깜깜이식 수가협상 구조 및 수가 산정 방식 개선 절실"
Q.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으로 떠났다. 이들을 되돌릴 방법은
정부와 의사 선배들이 국민, 전공의, 의대생에게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에 대해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제시한 7가지 요구안을 수용한다면 빠른 시일 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즉, '2025년 의대 정원'을 의제로,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와 합의를 통해 의대 정원 증원을 재논의해야 한다. 전공의가 제자리로 복귀하는 것이 병원 정상화의 첫걸음이다. 9월 전공의 모집으로 지금의 의료공백을 메우거나 의료손실을 회복시킬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전공의 공백을 일반의나 전문의로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게다가 현재 많은 병원의 전문의와 교수들이 사직하고 있고, 사직을 고민하고 있다.
Q.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 가동을 주장한 바 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초고령 사회 전환에 따른 의료수요와 필수 및 지역 의료 강화를 위한 적정 의료인력 규모를 추정하고, 중장기 인력 수급 정책을 수립하는 '인력수급 추계 및 조정시스템 구축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 중심의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가칭)와 정책 의사결정 기구를 이원적으로 운영해 논의하고, 그 안에 따라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가 수급 추계 가정 및 변수, 모형을 도출하고,정책 제안을 정책의사결정 기구에 보고한다. 그러나 이런 안은 장기적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현재의 위기 상황에는 맞지 않다. 최우선으로 8월 중순까지 완료될 수 있는 단기간 의정소통 기반의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 가동이 필요하다.
Q. 위원회 구성은
과학적 기반으로 정확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를 위해 단순히 연구자의 개인적 판단이 아닌 다양한 지표와 근거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며,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들이 동수로 참여해야 한다. 필수의료 붕괴와 도서벽지 격오지, 의료취약지 인프라 격차 문제 개선은 정치적 판단이 아닌 의료 정책 근거 하에 조정돼야 한다. 전문가 위원회를 통해 의대 정원 확충이 필요할 땐 늘리고, 감축이 필요할 땐 줄이는 기전을 마련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 간에 실제적인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2025년도 정원도 교육 가능한 현실적인 숫자로 서로 협상해야 한다. 2025년도 증원 인원을 유지한 채 2026년도 정원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상식 밖의 주장이다. 내년도 증원에 대한 인프라 및 교육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 불 보듯 뻔하고, 전공의, 의대생 복귀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증원된 신입생이 입학해 같이 수업할 경우 의대 교육 현장에서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Q. 여론 환기를 위한 대안도 필요할 것 같은데
정부가 정책 홍보를 할 때 달콤한 결과만을 제시하면 국민의 찬성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감내해야 할 값비싼 비용 등이 빠진 대중영합주의 정책은 당장은 듣기 좋으나, 결국은 잘못된 정책임을 국민들이 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대구시의사회는 의대 증원 정책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지역 언론을 통해 기고하고, 의사회 유튜브나 SNS를 통해 홍보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Q. 의원 유형 수가협상이 결렬됐다. 이에 대한 의견은
올해도 의원 유형의 수가 협상이 결렬됐다. 의협 수가협상단은 건보공단 협상단으로부터 1.9% 인상안을 제시받고 결렬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수가 계약 제도의 문제점으로 공급자 단체는 공단에서 제시한 최종인상률의 수용 여부만 결정하는 공정하지 못한 깜깜이식 협상 구조를 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가 산정에 제시되는 객관적 근거자료의 부재, 그리고 객관적인 중재 기구 부재 등도 있다. 개선 방안으로 공정한 협상 구조 마련을 위해 공단 재정운영위원회에 공급자 위원 참여를 보장하고 물가 인상률과 최저임금 등 객관적 상황을 감안한 기본 밴딩 규모 설정하고, 재정위는 밴드 규모와 결정 근거를 공급자 단체에 선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공단이 공익위원으로 참여하고 공급자와 가입자가 동수로 추천하는 보건 의료 전문가로 구성된 별도의 중재 기구를 신설해 수가 협상 결렬 시 중재 기구를 통한 합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Q. 마지막으로 한마디
올해로 창립 77주년을 맞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구시의사회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은 저에게 너무나 큰 영광이다. 저를 회장으로 선출해 준 6,500여 대구시의사회 모든 회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대구시민의 보건의료 향상과 회원 단합, 권익 보호 특히 전공의와 의대생, 즉 우리의 미래를 위해 회장의 의무를 다할 것으로 다짐한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필요할 때 언제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줬으면 한다. 여러분의 제안은 우리의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저는 회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대변해 대구시의사회를 성장시키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