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2024년 시행) 제89회 의사국시 실기시험’에 독소조항이 삽입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의정갈등으로 의사국시가 최저 응시율을 기록한 가운데 ‘시험 모니터링 영상은 시험운영 종료 후 즉시 폐기’라는 문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CCTV 영상 공개와 관련해 국시원과 의대생들의 행정소송 이후 의대생 일부 승소 판결에도 관련 조항이 시정되지 않은 것이다.
데일리메디 취재결과 국시원의 제89회 의사국시 실기시험 시행계획 공고에 대해 의대생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CCTV 즉시 삭제와 관련해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CCTV 영상 즉시 폐기…이의제기 원천 차단?
공고문에 따르면 실기시험 문항, 채점표, 채점기준표, 시험 모니터링 영상은 시험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비공개 대상이므로 공개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 일부 의대생들은 국시원이 CCTV 영상 즉시 폐기로 이의제기를 노골적으로 원천차단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실기시험 CCTV 영상은 국시원과 의대생들 모두에게 매우 예민한 이슈이다.
의사국시 실기시험은 시행 첫해인 2010년도(2009년 시행)부터 2018년도(2017년 시행)까지만 해도 ‘CCTV 영상 폐기’라는 문구가 시행계획 공고문에 명확히 기재돼 있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의 공고문을 확인한 결과, 공교롭게도 2018년 행정소송 이후 문구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CCTV 영상 비공개 이유가 2019년도(2018년 시행) 실기시험의 경우 ‘안정적 시행 목적’, 2020년도는 ‘사고 및 화재예방 목적’, 2021년도는 ‘안전사고 및 화재예방 목적’으로 계속 변경됐다.
이어 2022년도 제86회 실기시험부터 ‘응시동영상은 실기시험의 안전사고 및 화재예방을 목적으로 촬영한 영상물로서 시험종료 20일 후 폐기한다’라는 기존에 없던 ‘폐기’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국시원은 2020년도 실기시험부터 CCTV 영상을 시험 종료 20일 이내에 삭제해 왔다. 문제는 공고문에 CCTV 영상 삭제 내용이 포함된 시점은 2년 후인 2022년도부터였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응시생들이 합격자 발표일 전에 CCTV 영상이 자연스럽게 삭제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했다는 의미다.
의대생 A씨는 “국시원은 2018년 패소 및 정보공개 이후 이전에 없던 ‘CCTV 영상 폐기 기간’이라는 독소조항을 신설해 응시생들이 정신없을 사이에 영상을 삭제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송 이전에는 증거보전신청이 접수되기 전까지 1년가량 CCTV 영상을 보관했는데, 갑자기 20일 후 폐기라는 공지는 왜 하기 시작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즉 시험은 보통 11월 초에 끝나 합격자 발표일은 12월에 이뤄지는데 이미 CCTV가 삭제돼 응시생이 이의 제기를 하고 싶어도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실기시험 시행계획 공고문의 문구 변경은 의대정원 증원 사태 속에서 접수된 올해 슬그머니 이뤄졌다는 지적으로, ‘시험 종료 후 20일 후 폐기’가 ‘시험운영 종료 후 즉시 폐기’로 변경됐다.
국시원 “시험종료 후 즉시 삭제 의미 아냐”
국시원은 ‘시험운영 종료 후 즉시 폐기’라는 문구가 다소 불명확해 오해할 만한 표현인 점은 인정하나, 지난해보다 CCTV 저장 기간은 더 길어져 개선됐다는 설명이다.
CCTV 자료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사용 목적이 다 하면 바로 파기하게 돼 있는 만큼 ‘20일 이내’라는 애매한 표현을 ‘즉시’로 변경했다.
‘시험운영 종료’라는 의미는 ‘시험운영’ 과정에 ‘합격자 발표’까지 포함된 것이니 결과적으로 ‘합격자 발표 즉시 폐기’로 이해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국시원 관계자는 “불명확하게 쓰인 면은 있지만 시험운영이라는 것은 합격자 발표까지를 말하는 것”이라며 “실기시험 당일 바로 삭제가 아닌 합격자 발표 후 폐기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까지도 보관 날짜가 20일 이내로 보통은 합격자 발표 전에 삭제됐지만 올해는 합격자 발표 즉시 폐기인 만큼 실질적으로 CCTV 보관 기간은 더 늘어나 전보다 늘었다”고 덧붙였다.
CCTV 촬영 목적은 재채점이나 이의제기가 아닌 실기시험의 안전사고 및 화재 예방을 위한 용도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공식적 이의신청 기간은 전산상의 점수 산출 오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CCTV 영상을 응시생들에게 일일이 공개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국시원 관계자는 “CCTV 촬영과 삭제 절차 및 방법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례도 있다”며 “다른 시험들도 CCTV 녹화 영상으로 재채점을 하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국시원 해명에도 의대생들 ‘불신’ 여전
반면 시험 당사자인 의대생들은 이런 국시원의 해명에도 불신이 가득한 모양새다.
또 다른 의대생은 “20일 이내를 즉시로 변경했더라도 끝까지 진실을 감추겠다는 의도만 더욱 명확히 한 것이기에 응시생 입장에서는 달라질 것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CCTV 영상을 삭제하는 행위 자체가 국가기관인 국시원이 스스로 법을 곡해하고 편법을 권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있다.
또 다른 의대생은 “합격자 발표 즉시 원본 서술형 답안지를 소각하는 시험은 없고 더욱이 시험만 전담하는 공공기관이 당사자가 보존을 원하는 정보를 파기하는 것은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실례로 인사혁신처는 기록관리기준표고시에 따라 답안지와 응시서류 등의 경력경쟁 채용시험 원자료가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것을 감안하고도 3~5년간 보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대생은 “국시원은 2019년에 다수 의대생들 저항이 극심할 것 같으니 몰래 CCTV를 폐기하다 최근 들어 공고문을 더욱 노골적으로 변경하는 모습을 보면 위협적으로 느꼈다”고 호소했다.
이어 “국시원은 치부 감추기가 먼저라는 교훈을 미래 의사들에게 직접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