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간염 발생 예측 모델을 새로 개발, 임상적 유용성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향후 15년간 국내에서 4만명의 간암 환자 발생을 예방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사진]팀은 "간수치가 정상 범위에 해당되고 간경화가 없는 국내 B형간염 환자에서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중간 수준(혈액 1mL당 100만 단위·6 log10 IU/mL)일 때 간암 발병 위험이 가장 높은 사실을 확인했으며 대만, 홍콩 등 동일 조건의 다국적 B형간염 환자 7000명에서도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팀은 특히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 외 간암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추가 변수로 혈소판 수치, 나이 등을 반영해 간암 예측모델을 새롭게 개발했으며, 검증 결과 높은 예측 정확도와 임상적인 유용성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지난 2020년 서울아산병원 환자 빅데이터를 활용한 선행연구를 통해 간경화가 전혀 없고 간수치(ALT·알라닌 아미노전이효소 수치)가 정상인 만성 B형간염 환자에서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혈액 1mL당 100만 단위 근처일 때 간암 발생이 가장 많다는 사실을 세계 처음 보고했다.
또 해당 환자들은 장기간의 간염 치료에도 간암 발생 위험도가 절반 정도 낮아질 뿐 여전히 가장 높은 위험도를 유지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간암 발생 위험이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비례해 선형적으로 증가하며, 간염 치료를 시작한 후에는 바이러스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간암 발생 위험과 간염 바이러스 수치는 큰 연관이 없다고 여겨졌다.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100만 단위에서 간암 발생 위험이 가장 높아"
하지만 연구팀은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100만 단위에서 간암 발생 위험이 가장 높고, 이보다 더 높아지거나 낮아질수록 간암 발생 위험은 점진적으로 감소해 간염 바이러스 수치와 간암 발생 위험이 비선형적인 포물선 관계를 그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간암 위험도를 낮게 유지하려면 복잡한 B형간염 치료 개시 기준을 혈중 바이러스 수치만을 기준으로 단순화하고 조기에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는 기존 학계에서 20여 년간 믿어온 지식을 현실에 맞게 정정하는 결과다.
연구팀은 나아가 대규모 다국적 환자를 대상으로 이를 검증하기 위해 국내에서 간수치 상승이나 간경화가 없는 B형간염 환자 6949명의 데이터를 활용, 간암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모델(reREACH-B·Revised REACH-B)을 개발했다.
이 모델에는 환자 혈중 바이러스 수치 외에 연령 및 성별, 혈소판 수, 간수치, B형간염 항원 양성 여부 등 총 6개의 간암 발생 주요 지표가 포함됐다.
이후 대만과 홍콩, 한국에서 동일한 조건의 만성 B형간염 환자 7429명을 대상으로 외부 검증도 진행했다.
그 결과, 평균 10년 이상 추적기간 동안 간암 발생은 국내 환자군에서 435건이었으며 다국적 환자군에서는 467건으로 나타났다. 간암 발생 위험도는 두 환자군 모두에서 혈중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100만 단위 정도일 때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임영석 교수는 "현행 B형간염 치료기준을 만족하지 못하지만 간암 발생 위험이 높은 환자를 선별하고자 간암 발생의 주요 지표를 반영해 예측 모델을 개발했다"며 "향후 이 모델을 활용하면 개별 B형간염 환자의 간암 발생 위험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결과에 따라 그동안 근거가 부족해 치료 사각지대에 놓였던 만성 B형간염 환자들에게도 항바이러스제 치료 급여가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내과의사협회 공식 저널 '내과학연보' 최신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