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증원 사태를 계기로 대대적인 ‘의료개혁’을 천명한 가운데 이웃나라인 일본 ‘의료개혁’이 눈길을 모은다.
양국 모두 비슷한 시기 ‘의료개혁’을 추진 중이지만 그 결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한국은 진료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일본은 오롯이 의사 삶의 질을 중심으로 개혁을 도모 중이다.
국회도서관이 최근 발간한 ‘현안, 외국에선’은 의사를 중심에 둔 일본 의료개혁 상황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한국에 시사점을 준다고 짚었다.
이번 보고서는 일본이 노동기준법 개정을 통해 2024년 4월부터 의사의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은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의사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가 심각해졌고, 특히 2022년 고베시에서 발생한 26세 의사의 사망 사건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특히 ‘과로사 라인’이라 불리는 연간 96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외 노동에 내몰린 의사가 40%를 넘었으며, 근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의료사고 비율이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월평균 실 근무시간이 150시간 미만일 경우 의료사고 등을 경험한 비율이 50.7%였지만 250시간 이상 300시간 미만일 경우 60.3%로 증가했다.
이에 일본 후생노동성은 의사들의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노무 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환자에게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의료개혁을 추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대책으로는 시간외‧휴일 노동시간 상한 규제, 의사의 건강 확보, 업무 이관 등이 포함돼 있다.
진료에 종사하는 의사의 시간외‧휴일 노동은 연간 960시간, 월 80시간으로 제한되며, 응급의료 등 필요한 경우 최대 연간 186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월 100시간 이상의 초과근무가 예상되는 경우 의무적으로 면접지도를 받도록 하고, 병원 차원에서 의사의 건강을 관리하고 피로도와 심신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도 마련했다.
무엇보다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의사의 노무관리 개혁이다. 타 직종에게 의사 업무 일부를 맡기는 시스템을 보다 공고히 함으로써 의사들이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은 지난 2015년부터 ‘특정행위에 관한 간호사 연수제도’를 마련해서 해당 교육을 받은 간호사들이 특정 의료행위를 수행토록 하고 있다.
‘특정행위’도 △위장관 튜브 교환 △카테터 교환 △방광루관 교체 △인슐린 투여량 조절 등 38개 행위로 구체화 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했다.
우리나라의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인력) 같은 역할이지만 현행법상 불법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간호사가 의사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특정행위를 실시할 수 있다.
연수 수료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2023년 3월 기준 총 6875명에 달한다. 후생성에 따르면 연수 수료자 배치 후 의사 연평균 근무시간은 2399시간에서 1944시간으로 줄었다.
이 외에도 의사가 진료가 아닌 사무작업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별도 보조자를 두도록 했다.
의사 사무작업 보조자는 의사 지시로 진료기록 입력, 각종 서류 기재 등을 보조하는 종사자로, 원내 연수 등을 통해 필요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보조자는 진단서 등 서류의 초고 작성을 비롯해 원내 환자 이송, 입원시 오리엔테이션, 의사 컨퍼런스 준비, 당직표 작성 등을 담당할 수 있다.
이처럼 의사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 질과 안전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게 일본 정부 판단이다.
반면 우리나라 정부의 의료개혁 기치는 ‘무너지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려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언제 어디서나 최고 수준 의료서비스를 이용토록 한다’이다.
4대 개혁과제도 △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공정 보상 등 의사를 늘리고 시스템을 고치는 것에 맞춰져 있을 뿐 정작 의사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얘기는 포함돼 있지 않다.
보고서를 작성한 국회 의회정보실 이승주 조사관은 “의료진의 과도한 업무량이라는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던 일본 의료개혁 방향은 우리나라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