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정부를 비롯해 의료계, 환자단체가 모두 찬성해 추이가 주목된다.
이는 1987년 개정된 의료법의 '임신 32주 이전 성별 고지를 금지한다'는 규정을 삭제하는게 골자다. 올해 2월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대한 후속조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대표발의한 의료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심사 중이다.
박희승 의원은 "과거 남아선호 사상에 따라 태아 성(性)을 선별해 출산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 결과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 초래됐다"며 "이에 의료법에 해당 규정이 도입됐지만 국민 가치관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가 더 이상 사회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모가 태아 성별 정보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실제 헌법재판소 판단 배경이 된 것 중 하나는 2021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로, 인공임신중절을 시행한 이들의 90% 이상은 태아 성별을 모른 채 수술하기도 했다.
박희승 의원의 이 같은 개정안에 보건복지부는 찬성 의견을 냈다.
복지부는 "헌법 불합치가 아니라 단순위헌 결정을 내린 헌재 취지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태아 성별과 낙태 관련성이 낮고, 성감별 목적 검사는 여전히 금지되고 있으니 폐지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의료계와 환자단체도 헌재 결정을 존중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헌재 해당 조항의 존치 이유가 없다"고 했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태아 성별 정보에 대한 부모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개정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낙태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며 "성별을 이유로 한 선별 낙태에 대한 근본 해결책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유교 종단 중앙기구인 성균관 측은 "32주를 16주로 완화하되 성별고지를 원할 경우 부모에게 상담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절차를 추가해야 한다"며 "성별 고지 후 일정 기간 내 인공임신중절을 제한하는 규제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한편, 태아 성별고지 시기 규정을 완전히 폐지하는 게 아니라 32주에서 16주로 완화하는 법안도 발의돼 있다.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7월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으로 복지위에 회부만 된 상태다.
이에 대해 이지민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2019년 헌재 판결로 낙태죄 조항 효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태아 성별고지 금지 규정을 삭제하기보다는 제한 시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개선입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영하 의원안과 복지위에 회부됐으므로 함께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