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건강보험’이라고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에는 보험사들의 보험금 미지급 사례가 늘면서 환자와 의료기관들 불만이 비등해지고 있다. 특히 보험회사들이 임의로 ‘입원 적정성’을 판단하는 행태가 늘어나면서 일선 의료기관들에서는 반감이 상당하다. 입원 적정성은 환자 상태와 증상, 치료방식 등 의학적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하지만 보험회사 자의적 해석을 통해 부당한 삭감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안의 심각성은 지난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등에 연말까지 실손보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데서도 파악된다. 데일리메디는 2024년 특별기획으로 서울시병원회와 정책 좌담회를 개최, 입원 적정성 논란을 짚고 실손보험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 대안을 모색했다. [편집자주]
이번 좌담회는 ‘실손보험 입원 적정성을 논하다’라는 주제로 지난 10월 30일 오후 6시 서울 파크루안에서 개최됐다.
서울특별시병원회 고도일 회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중앙대학교병원 권정택 원장 ▲대한의사협회 이태연 부회장 ▲대한병원협회 서인석 보험이사 ▲입원료심사조정위원회 이재학 위원(서울시병원회 총무위원장) ▲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대표변호사 ▲보건복지부 강준 의료개혁총괄과장이 패널로 참여해서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을 논의했다.
"보험사 자의적 해석 늘어나면서 실손보험 가입자(환자) 피해 가중"
최근 실손보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중 하나는 ‘입원 적정성’이다. 입원 적정성이란 말 그대로 환자 상태가 입원치료를 필요로 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말한다.
입원 적정성은 기본적으로 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환자 증상, 진단 및 치료 내용과 경위 등을 바탕으로 의사가 내리는 판단이다.
의학적 필요에 따라 입원한 환자들은 자신이 가입한 실손보험사에 입원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으나 최근 보험사들이 입원 필요성에 문제를 삼으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심한 통증으로 단기입원을 한 경우 치료에 대해 입원이 필요없다는 것을 실손보험사에서 임의로 판단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의적 해석에 많은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병원들은 환자들 민원까지 떠안으면서 고충이 늘고 있다.
"입원 적정성 기준은 환자 진료한 '주치의 소견' 최우선"
이날 대한의사협회 이태연 부회장 겸 실손보험대책위원장 근본적으로 입원 적정성으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사들이 진료 자체에 대한 적정성을 논해야 하는데 ‘입원을 했냐, 안했냐’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특히 최근 환자 편의성을 위해 당일 입원, 당일 수술, 당일 퇴원을 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입원을 해야만 보험금 지급이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입원 및 외래 진료비에 대한 차이가 없다. 단지 하루 이틀 정도 입원을 했다고 보험금 지급을 하는 것은 보험사 입장에서도 보험료를 지급해야 할 상황만 늘어날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병원회 이재학 총무위원장(입원료심사조정위원회 위원)은 기본적으로 입원 적정성은 환자를 진료한 주치의 소견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예컨대 통증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개념이라 의무기록만 갖고 판단하기 상당히 어렵다. 항상 주치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입원료심사조정위원회(이하 입심조)에서 세우고 있는 ‘아웃라이어’(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표본) 의료기관 기준에 대해서도 거듭 강조했다. 아웃라이어라는 분석 자료만 있으면 적정 입원 여부를 쉽게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입원율에서 이상 분포를 보이는 의료기관에 적용되는 고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입심조에서도 이러한 전제를 갖고 문제 기관 사례 심사를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자문은 자문일 뿐 한계 존재…보험사 갑질·부당행위 만연"
보험사 의료자문 제도 역시 도마위에 올랐다.
의료자문 제도는 보험사와 보험계약자 간 보험금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해당 사안이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보험사기를 방지하도록 제3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로부터 객관적인 소견을 구한다는 취지지만 보험금 감액 혹은 지급 거절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특히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지정한 병원에서 의료자문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해 환자들의 원성이 높다.
대한병원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은 의사가 서류로 입원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고 꼬집었다.
특히 서 이사는 “법원도 자문에 대해서는 참고할 뿐이지 판결을 내리지 않는데 보험사에서는 자문을 마치 법원 판결처럼 악용하다 보니 환자들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대표변호사도 “보험사들이 환자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약관에는 의료자문이 필수라고 적지 않고 스스로 약관을 어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환자 입장에서는 금융감독원 민원과 청구소송 등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어느 한 가지도 실효적이지 않다”며 “결국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보험사 얘기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