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上] 마약류 오남용 및 중독 문제가 끊임 없이 불거지는 가운데 병원 현장에서 마약류와 매일 씨름하는 직군이 있다. 바로 병원약사들이다. 의료기관에서 향정신성의약품(향정)·마약·대마 등 이른바 마약류는 구입부터 폐기단계까지 병원약사들 손을 거친다. 지난 2015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 도입 이래 마약류 규제는 계속 강화된 한편, 현장에서 마약류 업무량은 일반약의 6.2배까지 증가했다. 한국병원약사회와 데일리메디는 ‘의료용 마약 오남용 제로(Zero)를 위한 병원약사의 제언’ 정책좌담회를 개최했다. 이형순 병원약학교육연구원 차장이 좌장을 맡고 ▲황보영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약제팀장(한국병원약사회 부회장) ▲정경주 용인세브란스병원 약제팀장 ▲정은경 국립암센터 약제부 파트장 ▲임윤희 前 아주대요양병원 약국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의료기관 내 마약류 관련 업무 및 인력·수가 현실화 필요성 등 현장 병원약사들 주장을 2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이형순 좌장 : 병원약사들은 마약류 관리를 어떻게 하며, 일반약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황보영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약제팀장 : 마약류는 ▲구입 ▲보관 ▲처방 ▲조제 ▲투약 ▲폐기 등 全 과정을 NIMS에 보고한다. 특히 마약은 구입 시 낱개약품까지 일련번호를 관리하며 이중잠금 장치 철제 금고에 보관한다.
처방은 의사가 하지만, 병원약사도 매년 더해진 마약 처방 규제와 관련해 전반적인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조제 시에는 조제 건 마다 재고와 일련번호를 확인하고 이송 장비를 사용할 수 없어 직접 사람의 손으로 전달한다. 폐기는 특히 중요하다. 쓰고 남은 약도 전부 관리해야 한다.
정은경 국립암센터 약제부 파트장 : 우리 병원은 약무파트는 구입보고, 각 파트로의 저장소 이동처리, 반품 마약류 양도보고 등을 맡고, 조제파트는 조제보고, 반납보고, 잔여마약류 관리, 폐기보고 등을 수행한다. 마약 사용량이 많아 구입보고 및 조제보고는 전산팀 도움을 받고 있다.
NIMS 시행 이전에도 마약류는 매일 재고량을 맞춰 엄격히 관리해 왔지만 NIMS 요구조건을 맞추기 위해 전산 개발과 관리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조제·투약 단계는 문제 없어도 보고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누락으로 업무정지 처분을 받을 수도 있어 심적 부담이 높다.
“NIMS 요구 맞추기 위한 전산 개발‧관리 힘들고 업무정지 우려에 심적 부담”
“마약류 관리자 부재시 의사가 처방적정성 검토, 업무 과중‧환자안전 위협”
이형순 좌장 : 유명인의 불법투약 등 사례가 잇따르며 마약 관리가 허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특히 남은 약 처리가 중요해 보인다
정은경 국립암센터 약제부 파트장 : 매일 마약류 재고량을 맞추는 작업도 보통 일이 아니다. 마약과 향정 전산재고량과 실재고량을 확인하고, 단 1알 혹은 반알이라도 재고량이 일치하지 않으면 모든 약사들이 탐정처럼 약을 찾아헤맨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은 마약 다루는 약사라면 모두 해봤을 것이다. 빈박스만 모아두는 전용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훈련하며, 일과 중에는 청소 담당 직원도 그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도록 하고 있다.
황보영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약제팀장 : 1300병상 대학병원의 일주일 평균 잔여 마약류 폐기 현황을 조사한 결과 폐기통이 70박스 나온다. 마약은 2000여 건, 향정은 2400여 건 등이 폐기된다.
이 막대한 양을 이상한 경로로 사용되거나 유출되지 않게 폐기해야 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내려지는 행정처분은 마약에서 특히 무겁다. 일례로 소지 재고량과 보고·확인 재고량이 다르면 받는 행정처분은(1차 기준) 향정은 경고~1개월 업무정지지만, 마약은 3개월 업무정지다.
이형순 좌장 : 마약류 관리는 이렇게나 부담이 많은 업무인데, ‘나 홀로 약사’가 근무하는 중소요양병원이나 아예 마약류 관리자가 없는 의료기관들의 사정은 어떠한가
임윤희 前 아주대요양병원 약국장 : 요양병원 약사인력 기준은 1인 이상의 약사를 두되, 200병상 이하의 경우 주 16시간 이상 시간제 근무약사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병상 이하 규모 요양병원은 전체 요양병원의 60%다.
그런데 시간제 약사는 주 2~3회, 일 4~5시간 근무하기에 약사가 ‘없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1인 약사가 주 40시간 상근하더라도 부재 시 대체 약사가 없어 약사 관리를 벗어난 마약류 사용이 중소요양병원에서 다수 발생하고 있다.
마약류 관리 사각지대는 특히 지참약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요양병원은 최소한의 마약성 진통제만 있고 암환자가 종합병원에서 처방받아 온 지참약에 의존한다. 이는 처방한 종합병원에서 NIMS에 조제보고된 것으로 요양병원에서는 관리 대상이 아니다. 약사가 부족해 지참약 조제·투약은 병동에서 이뤄지고, 관리대장도 수기로 작성된다. 남은 약(藥) 파악이 어려운 이유다.
정경주 용인세브란스병원 약제팀장 : 약사법은 마약을 처방하는 의사가 4명 있어야 마약류 관리자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1970년대에서 변한 것이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윤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금년 9월 기준 마약을 사용하는 병원 20%, 요양병원 18%, 의원 99%는 마약류 관리자가 없는 실정이다.
의료기관에 마약류 관리자가 없다면 의사가 스스로 처방적정성을 검토해야 하는데 진료에 더해 과중한 업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환자안전 위협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에 특히 작은규모 의료기관에서 마약류 취급자가 별도 지정되고, 마약류 관리자를 지정하는 기준이 의사 수가 아니라 처방량과 업무량에 따라 차별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