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대학병원의 가치인 '교육‧연구‧진료'의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 특히 교수들이 진료에만 매달리며 연구역량이 붕괴한 형국이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2~15일 교수들을 대상으로 연구에 할애하는 시간을 조사한 결과, 이번 의정갈등 이전 대비 35.7%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22일 밝혔다.
급한 진료 업무를 유지하기도 힘든 현 상황에서 오랜 기간 공들여야 하는 연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교수 10명 중 7명은 '24시간 근무 후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절반 가까이(45%)는 주 72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진료량 축소 조치 등으로 사태 초기에 비해서는 다소 나아졌으나, 여전히 대다수의 교수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여 있는 상태"라며 "문제는 이런 상황이 9개월 이상 지속됐고 앞으로도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단 서울의대뿐만 아니라 국내 의학연구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대한의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JKMS'에 올해 1~8월 최종 게재된 논문은 305편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408편보다 25.2% 감소한 수치다.
최근 추계학술대회를 진행한 각 학회에서도 곡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달 17~18일 열린 대한응급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는 27편의 구연발표와 7편의 포스터가 발표가 있었다. 이 역시 지난해 추계학술대회에서 구연발표 82편, 포스터 발표 83편과 비교했을 때 크게 줄었다.
도약기 놓였던 국내 의학연구, 의정갈등으로 '10년 퇴보'
올해 우리나라 의학 연구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중차대한 시기에 놓여 있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학연구 업적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2021년 약 63만건의 의학 논문을 발표하며 논문 수 기준 전 세계 13위에 올랐다.
의학 연구 논문은 양적인 증가뿐 아니라 피인용 상위 학술지 게재 비율, 분야별 피인용 영향력 지수 등 질적인 측면에서도 향상됐다.
다만 최근 몇 년간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국내 의학 연구가 정체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여기에 이번 사태가 더해지며 국내 의학 연구역량이 치명타를 입었다는 우려가 줄잇고 있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이번 사태로 인해 향후 연구 성과는 오히려 줄어들고 다른 국가와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며 "이번에 무너져버린 연구역량을 복원하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의과학 연구역량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의학계의 연구역량은 10년 이상 퇴보할 것"이라며 정부를 향해 "지금 개혁이란 미명 아래 밀어붙이는 정책이 국가 미래를 책임질 연구역량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냐"고 목소리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