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사태로 수련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10개월째 돌아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예정대로 상반기 전공의(레지던트, 인턴) 모집을 시작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다.
수련현장 정상화 최대 변곡점이 될 것이란 전망 속에 치러졌지만 데일리메디 취재결과 모집 첫날 대부분 수련병원에서 지원자는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전공의 모집을 하루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내린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 등 의료인 48시간 내 복귀'라는 포고령이 그나마 남아있던 복귀 가능성마저 무너트렸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지난 2일 '2025년도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임용시험 시행계획'을 공지하고 이날부터 본격적인 선발 일정에 돌입했다.
레지던트 1년차는 4일부터 9일까지 수련기관별 원서접수 후 15일 필기시험이 진행된다. 17~18일 면접을 보고 19일 합격자를 발표한다.
수련병원별 모집 정원은 올해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모집정원(총 3356명)과 비슷하거나 조금 늘어난 수준이다.
정원이 소폭 늘어난 것은 정부가 당초 수도권 대 비수도권 전공의 정원을 올해 5.5대 4.5에서 내년 5대 5로 줄이려던 것을, 5.5대 5로 조정했기 때문이다.
수도권 정원을 그대로 가져가 사직 전공의들이 돌아올 자리를 유지한다는 차원에서다.
특히 정부는 올해 전공의 지원자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전·후기 구분 없이 일괄 모집하기로 했다.
또 레지던트 1년차 선발 시 2지망 제도를 운영한다. 동일 병원 1지망 불합격자 중 육성지원과목과 내·외·산·소 및 응급의학과를 2지망으로 선택한 지원자를 추가 합격시킬 수 있다.
문제는 지원율이다. 본지가 이날 하루 전국 수련병원 지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병원에서 지원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젊은의사들의 선호도가 높은 빅5 병원조차 지원자는 찾기 어려웠다.
현재 빅5 병원에서 1년차 레지던트는 ▲서울대병원 105명 ▲세브란스병원 104명 ▲서울아산병원 110명 ▲삼성서울병원 96명 ▲서울성모병원 73명을 모집한다.
히지만 모집 첫날인 4일 오후까지 지원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A대학병원 교육수련부 관계자는 "현재 지원자는 물론 문의 전화조차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 날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은데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 소재 B대학병원 교육수련부 관계자도 "모집 첫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상황을 지켜봐야하지만 특별히 얘기해 줄 만한 내용이 없다"고 전했다.
실제 전공의들이 얼마나 지원할지 전망하기는 어렵지만 물리적으로 낮은 국시 지원율을 고려하면 지원 가능한 인원 수는 예년 수준을 크게 밑돌 것으로 보인다.
레지던트 1년차는 인턴을 마치고 지원할 수 있는데 현재 211개 수련병원 인턴 3068명 중 102명(3.3%)만 정상 출근 중이다.
내년 1월 치러질 국시 필기시험 응시자는 304명으로, 올해 10분의 1 수준이어서 이들이 모두 합격한다고 해도 모집정원엔 턱없이 모자란다.
C대학병원 교육수련부 관계자는 "국시를 본 사람이 얼마 없어 병원 내부적으로도 기대감이 없다. 병원 자체적으로 전공의가 오지않을 걸 고려해 체질변화를 계속해서 시도 중"이라고 귀뜸했다.
의료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 모집 하루 전날 선포한 비상계엄도 '불난 집에 기름은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긴급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계엄사령부는 제1호 포고령에서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적시했다.
포고령에 담긴 6가지 항목 중 국회와 언론을 제외하면 특정 직역이 언급된 것은 의사가 유일하다.
계엄은 선포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사직 전공의들은 '처단'될 수 있는 당사자로 지목된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포고령이 발표된 직후 사직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복귀 대상인지, 복귀해야 한다면 어디로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큰 혼란이 일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전공의 복귀를 계엄으로 해결하겠다는 접근에 말문이 막힌다"면서 "복귀 가능성이 있는 전공의들 의지마저 꺽어버린 발언이고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비상계엄 선포 해제 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반민주적 행태에 국민 한 사람으로서 또 한 번 참담함을 느낀다. 독재는 그만 물러나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레지던트 임용 전형이 종료된 후 진행되는 인턴 모집도 전망이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인턴 모집은 내년 1월 22일과 23일 양일간 원서접수를 시작으로 24일부터 27일 면접을 거쳐 31일 합격자를 발표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정부 기조 변화 없이 현 상황에서 나아질 게 전혀 없다. 변화하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