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1일 만에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아무런 예고나 징조 없이 벌어진 비상계엄에 전국은 요동쳤다. 의료계도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처단까지 언급된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깊은 밤을 지새웠다.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이제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지난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의료계를 비롯한 각계에서 각고의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밤 중 불법 비상계엄…국회로 뛰어간 국민들…2시간만에 종료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시 23분 우리나라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거듭되는 내각 탄핵 시도와 내년도 예산 삭감에 대해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로 규정하고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계엄 선포와 함께 설치된 계엄사령부는 이윽고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폭압적이고 기이하기까지 했다.
우선 국회 및 정당의 정치활동을 일체 금지했으며, 모든 언론과 출판의 자유 통제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전공의 등 미복귀 의료인에 대한 처단, 재판 절차나 영장 없는 일방적인 체포‧구금‧압수수색 등 국민의 정치적·사회적 기본권을 박탈하는 조치가 포함됐다.
국민들은 45년 전 계엄 상황을 떠올리며 경악했다. 특히 의료계는 이미 사직한 전공의를 복귀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처단' 대상에 오른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공의라는 단어가 왜 여기에 들어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정말 잡혀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은 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로 달렸고, 국민들 역시 계엄 저지를 위한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여의도로 뛰쳐 나갔다.
그와 동시에 계엄사령부는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 장악에 나섰다. 국회를 봉쇄하는 동시에 국회의장‧여야 대표 등을 체포해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사전에 처단하겠다는 의도였다.
국회와 계엄군의 속도전이었다. 군‧경의 봉쇄 시도에 국회 밖에서는 시민들, 안에서는 국회의원 보좌진이 맞섰다.
결국 4일 오전 1시 1분경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면서 계엄은 법적 효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이날 오전 4시 30분경 계엄 해제가 선포되면서 상황은 약 6시간 만에 종료됐다.
여당에 가로막힌 탄핵…의료계도 거리 나서 반발
한 밤중의 계엄 사태가 일단락 되자마자 탄핵 후폭풍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각계에서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고, 의료계 전 직역도 적극 목소리를 함께 냈다.
4일 가톨릭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을 오늘 이후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전라남도의사회는 "윤석열 정부와 더 이상 대화와 협상이 불가능하다"면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운동의 선두에 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계엄 선포 자체가 명백한 탄핵 사유로 그가 퇴진할 때까지 '무기한 파업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고 나서며 여론은 다시 한번 분노로 들끓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5일 시국선언문을 통해 "사상 초유 사태를 두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 반대를 결정했다"며 "이는 정권 재창출이라는 당리당략만을 추구한 결정"이라고 힐난했다.
윤 대통령은 탄핵안 표결이 있던 7일 오전 "제2의 계엄은 없을 것"이라며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결국 국민의힘이 7일 탄핵안 표결에 불참하기로 당론을 정하면서 표결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당시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 105명은 표결 직전 퇴장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하루빨리 윤석열을 퇴진시키는 게 국가를 위한 길"이라고 목소리 높였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을사오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힐난했다.
의료계에서도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와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다음날이 8일 각각 집회를 열고 윤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했다.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대통령에 돌아선 여당
이후 계엄 당시 지휘부 증언들이 쏟아지며 위법적 요소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경찰‧공수처가 각기 내란죄 수사에 나서며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지휘부 구속도 이어졌다.
이에 윤 대통령 퇴진에 대한 국민들 요구는 더욱 높아졌으며, 탄핵을 반대한 국민의힘을 향한 비판 여론도 거세졌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성난 여론을 더욱 불타게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계엄 선포를 "대통령의 법적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피력하며 탄핵과 수사에 대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질서 있는 퇴진'을 강조하며 대통령 보호에 나섰던 국민의힘도 명분을 잃고 말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기 퇴진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표결 때 우리 당 의원들은 소신과 양심에 따라 표결에 참여해야 한다"며 탄핵 찬성으로 선회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지아, 김재섭, 진종오 의원 등 친한계와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다.
결국 탄핵안은 지난 14일 두 번째 표결에서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가결됐다.
이로써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으며, 한덕수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넘겨받았다.
윤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직후에도 "지금 잠시 멈춰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향후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적극 대응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그는 15일 검찰의 출석 요구에도 불응했다.
의료계 "붕괴된 의료 정상화 시작할 때"
의료계는 윤 대통령의 탄핵을 적극 환영하면서도 의대 증원 등으로 올해 급격히 무너져 내린 의료시스템을 하루빨리 회복시켜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장문을 내고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환영한다"며 "올해 2월 윤 대통령은 의료계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의료계는 현재 처참하게 붕괴됐다"고 개탄했다.
이어 "의료농단을 저지하고 의료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면서 특히 "의대 교육 붕괴를 막기 위해 2025년 의대 신입생 모집이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환영의 뜻을 밝히며 "현명한 국민께서 이제는 윤석열 발(發) 의료 탄압, 의대 탄압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 의대 교수들은 존경하는 국민과 함께 의료정상화, 의대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의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주수호 후보는 "정권에 부역하면서 대한민국 의료를 망가뜨린 핵심 관계자들을 업무에서 배제시켜야 한다"며 복지부 장‧차관과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 등을 지목했다.
최안나 후보도 "추진하던 의료농단 동력은 상실됐지만 동시에 이 사태를 책임질 사람 역시 사라졌다"며 "전공의 모집, 군 입대, 의대교육 등을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