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내년도 의대 모집 정지를 외치고 야당이 정책 선회를 요구했지만 정부 입장은 확고부동한 상황이다. 정부 의지 문제가 아니라 법령과 법규에 따라 이제는 변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8일 오후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올해 안에 정부가 의대 증원과 관련해 유연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교육부를 압박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직권 정지 상태에 있고, 의료계가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을 정부는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의원들이 이 같이 재촉하는 이유는 이달 18일자로 이미 대입 수시 등록이 마감됐고, 오는 1월 3일 정시 모집까지 마감되면 의대 증원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김준혁 민주당 의원은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조정이 왜 불가한지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물었다. 김 의원은 "수시는 끝났지만, 지금이라도 특단을 내려 정시모집 인원을 조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이주호 장관은 대입전형시행계획과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근거로 들며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 장관에 따르면 대입전형시행계획은 수시와 정시 인원을 따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제시한다.
이 장관은 "이를 변경할 수 있는 예외사항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33조 3항 중 6번째 내용인 '천재지변' 뿐이다"며 "의대 증원 변동을 천재지변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못박힌 정시 인원을 바꾸는 건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김준혁 의원은 "비상계엄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 상황이 천재지변과 유사한 상황인데, 교육부 장관이 특단의 조치를 못 내릴 이유가 왜 없는가"라고 파고들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모집 정원을 변경할 경우 의대를 준비했던 학생과 학부모 등의 기대이익을 크게 훼손한다. 변경이 어렵다"며 "수차례 검토했지만 소송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서울의대·부산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 등 196명이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상대로 낸 '입학 정원 증원 처분 등 취소 소송'은 내년 1월이다. 이는 의료계가 제기한 의대 증원 무효화 관련 소송 중 가장 빠른 재판 일정으로, 1차 변론 기일이 정시 마감 이후인 1월 17일로 잡혔다.
"해당 소송이 용인된다면 처분을 취소하겠느냐"는 김준혁 의원 질문에 이 장관은 "법원 판단을 예단해 말하는 게 적절치 않아 보인다"며 답변을 거절했다.
"의료계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인데 교육부는 최소한의 성의도 못 보이나"
이 장관이 선을 그었지만 민주당 의원들 질타는 계속됐다. 진선미 의원은 "전공의 지원자 수, 의사국시 응시자 수를 좀 보라. 내년에 엄청난 공백이 생기는데 그것은 나몰라라 하나"라며 "정부는 마치 해결될 것처럼 희망고문하고 시간만 끌었다"고 꼬집었다.
김영호 교육위원장도 "의료계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남은 15일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는데, 교육부가 의료계에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 하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증원 정책을 발표하고 오늘까지 한 번도 의료계 주장을 반영한 적이 없다"며 "장밋빛 얘기만 하고, 1월 3일이 되면 정부 계획 100%를 관철되니 시간끌기를 하는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이대로라면 정부가 선을 그은 2025학년도 정원 뿐 아니라 열어놓고 대화하겠다던 2026년 정원 논의도 불가할 것이라는 게 김 위원장 시각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2026년도 정원을 논의할 때 이미 감정이 상해있을 것이다. 내년 4~5월까지는 매듭을 지어야 한다"라며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의료계에 진심을 보이라"고 주문했다.
한편, 19일(오늘) 민주당은 의료계와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김영호 교육위원장,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이 오후 4시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대한전공의협의회와 의협 회관에서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김영호 위원장에 따르면 이날 논의는 '2025학년도 정원'을 포함해 진행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의료계와 만나고 와서 필요한 사항은 정부에 다시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