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 지난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44개 병원이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됐다.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을 수행하는 3개 병원이 실질적으로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으로 고려했을 때 사실상 상급종합병원이 모두 참여한 셈이다.
의정갈등에 의한 원내 인력구조에 더해 이번 사업 참여로 인한 진료역량의 격변을 앞두고 상급종합병원들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6인실→4인실, 병상 감축 시행…뿌리 깊은 상종 선호 속 병상대란 우려도
이번 사업의 목적은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응급질환 진료역량을 강화하고, 이로써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이는 의료계 안팎에서 오랜 기간 요구했던 정책 방향인 만큼 병원계에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수도권 A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참여하는 데 있어서 실질적인 손익이나 목표 달성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중증·응급진료를 중시하는 병원장의 의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다만 세부 방침에 있어서는 급진적인 변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선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상급종합병원들의 가장 큰 변화는 일반병상 감소다. 수도권 소재 1500병상 이상인 의료기관은 일반병상의 15%를 그 외 기관은 10%, 비수도권 기관은 5%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다수의 병원은 병실 구조를 바꾸기 위한 공사보다는 병실마다 일부 병상을 없애는 방향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빅5 병원에 속하는 B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병상 감축을 위해 내부 공사를 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부담이 크다”며 “6인실의 병상 중 1~2개씩 빼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병상을 줄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병원 수익 변동과 병상 부족은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일단 병원 수익에 있어서는 이득이 더 클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는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병원에 대해 우선적으로 중증수술 910여개 수가와 마취료 등을 인상해주겠다고 했다.
한 병원계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들이 표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재정적으로는 무조건 이득”이라며 “의정갈등 이전과도 비교해도 그렇고 올해 상급종합병원들의 손실이 큰 상황에서는 더욱더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B병원 관계자는 “재정적으로 손해를 보진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한편으론 정권 교체 등으로 인해 사업이나 수가 인상이 또 멈추지 않을까 불안한 면도 있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병상 감축으로 인해 병상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빅5 병원에서만 약 4000병상이 사라지는 상황이지만, 국민들이 상급종합병원을 선호하는 현상은 뿌리 깊게 내려 있다는 지적이다.
한승범 상급종합병원협의회장(고대안암병원장)은 “일반병상을 줄이고 중환자실 등을 늘리도록 하는 취지는 동의하지만 상급종합병원 문턱 높이기 등의 조치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병상대란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했다.
지방병원, 중증환자 수 한계에 전문의 부족까지
병상 감축보다 더 어려운 과제는 중증 환자 비율을 높여야 하는 데 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상급종합병원들은 진료구조를 전환해 중증 진료 비중을 현행 50% 수준에서 70%로 상향해야 한다.
지방 소재 C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정부에서 상급종합병원들에 중증 진료 강화를 요구하는 분위기라서 사업에 참여하긴 했지만, 지역은 고령 만성질환자의 비율이 높아 중증 진료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이처럼 자력으로 중증 환자 수를 늘리기 어려울 경우 경증 환자 비율을 억지로 줄이거나 심지어 중증도 보정을 위해 질병코드를 변경하는 편법까지 동원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증환자 목표 비율을 70%로 설정한 근거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옥민수 울산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26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가 개최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쟁점과 전망’ 토론회에서 “앞으로 학회들이 질환 중증도 분류에 대해 정확성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적합질환군 비중이라는 지표에만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전체 중증도의 합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증 환자 증가에 따른 전문의 확보도 해결해야 하는 힘든 문제다.
올해 의정갈등으로 전문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지방병원에서 수도권으로, 또 수도권 내에서도 더 큰 규모의 병원으로 옮겨 가는 ‘전문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수도권 소재 D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특히 젊은 교수들이 모교나 더 큰 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 병원도 또 다른 병원에서 데려와서 전체 교수 수는 유지되고 있지만, 지방 병원은 교수 부족 문제가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옥 인하대병원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10월 국회에서 열린 ‘중증환자 중심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올바른 해법은?’ 토론회에서 “병원들 사이에 최대한 필수의료를 담당할 전문의를 보유하기 위한 보이지 않은 전쟁을 이미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미 기존 의료인력의 업무 부담이 가중돼 번아웃에 직면해 있어 실제로 수많은 필수의료 인력이 상급종합병원을 이탈하는 액소더스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절대적인 인력 부족 상황에서 전문의 중심병원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라며 “ 필수의료 전문의 고령화와 고위험과에 대한 지원 기피는 결국 필수의료 인력의 빠른 고갈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