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되는 의정갈등 속 한의계의 요구가 과감해지고 있다. 2022년 12월 초음파 기기, 2023년 8월 뇌파계 등 진단 영역에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합법 판결이 있었다. 그간 일차의료에 대한 참여 의지를 꾸준히 피력해왔던 한의계는 필수의료 참여를 넘어 이제 ‘계약형 공공필수 한정 의사제’라는 이름의 의사면허도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진단 영역이 아닌 전문의약품 사용 관련 재판이 이어지고 있고, 한의사 대상 미용 의료기기 교육도 활발히 이뤄져 의사들 시선이 따갑다. 데일리메디가 한의계 행보를 정리했다. [편집자주]
의정갈등 장기화 속 한의계 “의사 공백 메우겠다”…‘지역 공공필수 한정 의사제’
금년 전공의 공백 속에 추석 응급의료 대란이 예상되며 정부와 전국민이 긴장했을 때, 한의협은 발빠르게 “추석 응급실 부담을 줄이는 데 적극 동참하겠다”고 피력했다.
한의협은 9월 “한의원 616개소, 한방병원 215개소가 추석 휴일진료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감기·급체·장염·염좌·복통·열 등의 경우 한의의료기관을 찾는다면 응급실에서 기다릴 필요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의협은 “양의계 진료공백으로 인한 응급실의 부담을 덜고, 긴박한 환자들이 우선적으로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윤성찬 한의협 회장은 ‘지역 공공필수 한정 의사제’ 모델을 제시해 파장이 일었다.
이는 한의사를 2년 교육해 의사면허를 부여하는 게 골자로, 공공·지역·필수 영역에 한정해 근무시킨다는 조건을 걸었다.
연 300~500명의 한의사 면허 보유자를 선발해 의대와 한의대가 모두 있는 학교에서 교육하고, 이들이 교육을 수료하면 별도 국가고시를 치를 자격을 부여한다는 아이디어다. 대만 등 해외 제도에서 착안했고 상황 변화를 감안해 5년만 시행해보자는 제안이다.
윤성찬 회장은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양보할 뜻이 없는 상황에서 최대 14년이 걸리는 비효율적인 의사 수급보다 빠른 방법”이라며 “이는 의대 증원 폭을 줄일 수 있어 의사 단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의협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협은 “단지 인원 부족을 이유로 교육을 제대로 안 받은 이들에게 2년만 교육해 의사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공공의료를 경시하는 것”이라며 “의과 교육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협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의협은 재차 해당 모델 효과를 피력하고 나섰다.
한의협은 “지금처럼 의료인력 수급 난항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지자체 차원을 넘어 지역 주민이 스스로 의료인을 찾아나서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의사가 부족한 지역의 공공·필수의료 분야에 한의사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 필수·공공의료 분야에 한정된 의사가 파견되면 의사 부족 문제 해결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엔 전문의약품 리도카인 사용 논란…1심·2심 재판부 “무면허 의료행위”
금년 기준 한의사가 활용한 진단기기는 ▲혈액·소변검사기 ▲초음파 진단기기 ▲체외진단기기 ▲안압측정기·자동시야측정검사기·세극등검사기·자동안굴절검사기·청력검사기 등 헌법재판소 결정문상 5종 의료기 ▲뇌파계 등이다.
2022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초음파 허용 판결, 2023년 8월 뇌파계 허용 판결 등으로 의료기기에서 자신감을 쌓아 온 한의계지만 전문의약품 사용에 있어서는 제동이 걸렸다.
금년 10월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한의사 A씨 항소심에서 “한의사의 국소마취제 ‘리도카인’ 사용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22년 A씨가 리도카인을 마취·통증완화 목적으로 약침 시술에 사용한 게 발단이다. 이재희 변호사(의협 법제이사)가 A씨를 직접 고발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기소됐다.
앞서 1심에서 A씨는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고, 한의사도 전문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다”며 “정맥이 아닌 피내에 주사했고 소량만 사용해 위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리도카인의 용법·부작용 등을 고려하면 한의치료 보조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유죄(벌금형) 판결을 내렸다.
당시 한의협은 “한의사가 사용하는 한약(생약) 제제 중에도 전문의약품이 있다”며 “봉침치료 등 한의치료 시 환자의 통증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전문의약품을 한의사가 진료에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합법적 행위”라며 반발했다.
A씨는 항소했지만 금년 10월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재차 A씨 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판단하고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시한의사회 미용의료기기 교육 시행…의협 “명백한 불법” 반발
향후 미용 의료기기 사용을 두고도 의협과 한의협의 갈등이 거세질 전망이다. 서울시한의사회가 금년 4월부터 피부미용센터를 개설해 미용의료기기를 교육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서울시한의사회는 전문의약품을 사용하는 방법을 비롯해 고강도 집속 초음파(HIFU)·레이저 등 의료기기 사용법을 한의사들에게 교육하고 있었다.
의협은 2013년과 2016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들며 “명백한 불법”이라며 공분했다.
2013년 대법원은 잡티제거시술(IPL)이 한의사 면허 외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해 ‘불법’ 판결을 내린 바 있고, 2016년 대법원은 한의사가 비만치료에 카복시 시술을 한 것을 의료법 위반 행위라고 봤다.
의협은 “서울시한의사회 선동으로 한의사 면허로는 쓸 수 없는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거나 한약·한약제제가 아닌 의과 일반의약품·전문의약품을 사용한 한의사에 대해 형사고발을 통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경고했다.
반면 한의협은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레이저수술기를 비롯해 고주파자극기, 의료용레이저조사기 등 3등급 일반 의료기기 사용도 한방 의료행위로 허용돼 온 것으로 판결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양의계는 자신들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보건의료계를 어지럽히는 행태를 중단하라”며 “폄훼에 쏟을 시간·예산이 있다면 대리수술·리베이트 등 내부 정화에 힘쓰라”고 일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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