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오너일가, 최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23년초부터 다툼이 공개적으로 격화되고 이후 반목이 심화되면서 그 추이가 주목된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화두인 곳은 회장 모녀 대 장차남(형제) 구도로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한미약품 그리고 씨티씨바이오, 유영제약, 제일바이오 등이다.
특히 친족 간 갈등이 회사 내부 직원에게는 물론 외부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본업에 집중을 할 여유가 없다 보니 기업 이미지 하락은 물론 주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악화일로 충돌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4자연합+임종윤 합의 일단락
한미약품은 송영숙 회장·임주현 사장 대 창업주 장남과 차남 임종윤·임종훈 사장 구도 경영권 분쟁이 시간이 갈수록 격화됐다. 하지만 작년 연말 ‘4자연합’이 구성됐고,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도 고발을 취하하면서 분쟁 종식 가능성이 결론에 다다른 분위기다.
한미약품 경영권 사안은 지난 2020년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 초래됐다. 특히 송 회장 모녀와 형제 측 갈등은 2024년 1월 OCI 그룹 통합 발표 사태 이후 공식화됐다.
당시 임종윤 사장은 차남인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와 이사회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안 등 위법성을 따짐과 동시에 OCI 통합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같은해 3월 26일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으나 이틀 뒤 주총에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소액주주연대가 형제 측을 지지하면서 임종윤, 임종훈 사장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이때 임주현 부회장은 이사회 입성에 실패했다.
이후 4월에는 결국 OCI 홀딩스와 신주인수계약이 해제되고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에는 기존 송영숙 회장 단독대표 체제에서 임종훈 사장과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그러다 5월 임종훈 공동대표가 한미사이언스 단독 대표로 오르고, 형제 측이 신동국 회장과 함께 사업회사 한미약품 이사회에 입성하면서 형제 측 승리로 상황이 마무리 되는 듯 했다.
문제는 7월에 들어서면서 신 회장이 돌연 형제 측 지지를 철회하고, 모녀 측을 지지하기로 하면서 3인 연합이 만들어졌고 주식매매 관련 계약까지 체결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8월부터는 형제 측과 모녀 측이 각자 본인들의 측근 인원을 들이기 위한 임시주총 개최를 두고 갈등을 이어왔다. 소액주주 지지 여부도 엎치락 뒤치락하는 등 상황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모자(母子) 고발전’까지 이어진면서 갈등이 그야말로 최고조다. 형제 측은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 3인 연합(신동국, 송영숙, 임주현)을 고발했다. 형제 고발에 모녀도 ‘무고’로 맞대응했다.
그러다보니 우려는 점점 커졌다. 분쟁이 1년이 되도록 장기화되면서 주가에 영향을 줬고, ‘횡령 및 배임’ 혐의 관련 수사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될 수 있는 악재 중 하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3자연합과 백기사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와 주주간 계약 체결로 ‘4자연합’이 구성됐고,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도 고발을 취하하면서 분쟁 종식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 4인연합(신동국, 송영숙, 임주현, 라데팡스) 측은 한미사이언스 임종윤 사내이사가 보유한 지분 5%를 매입하고 "지속가능 경영 체제 구축이라는 합의를 도출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같은 상호 협력 일환으로 4인연합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는 상호 간 제기한 민형사상 고소, 고발은 모두 취하했다.
4자연합 측은 "이번 합의를 통해 그룹 거버넌스 이슈를 조속히 안정화하고, 오랜기간 주주가치를 억눌렀던 오버행 이슈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홀로 남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4자연합 측은 설득을 통해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합의가 안된다면 정기주총에서 임주현 부회장 등을 새롭게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등 지배력 강화를 시도할 수 있다.
창업주 별세 후 지배구조 변화 씨티씨바이오
씨티씨바이오는 고인이 된 김성린 창업주가 1993년 서울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친구 및 선후배 4명이 함께 설립한 곳이다. 당시 김성린 공동대표를 최대주주로, 멤버들이 지분을 나눠 가졌다.
그러다 2013년 김 대표가 돌연 심근경색으로 별세하면서 지배구조가 흔들렸다. 최대주주 지분이 줄었고, 몇은 회사를 떠났고 조호연 회장, 성기홍 사장 등 남은 멤버들이 회사를 이끌었다.
이후 창립멤버들도 경영 일선에서 한 발 물러서고, 씨티씨바이오는 2020년에 20년간 회사에 재직하며 연구소장 등을 거쳐 사장 직책까지 오른 전홍열 사장에게 당시 대표를 맡겼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최대주주 등의 지배력이 약해진 사이 이른바 ‘적대적M&A’가 이뤄졌다.
회사 재무적투자자(FI)였던 한국투자파트너스 엑시트 과정에서 협력사였던 더브릿지가 동구바이오제약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회사 지분 19% 가량을 확보한 것이다.
2021년 들어서 5% 미만의 지분을 미리 확보한 뒤 장내매수를 통해 빠른 시간 안에 지분을 크게 늘렸다. 창립멤버와 전홍렬 대표 입장에서는 대응할 시간과 자본이 없었다.
결국 최대주주가 변경됐고 한때 협력관계였던 이민구 더브릿지 대표가 회사를 이끌게 된다. 이 대표는 기존 임원진을 갈아치우고 창업주 색을 지우기에 나섰다. 이때 전 대표도 회사를 떠났다.
전 전(前) 대표는 씨티씨바이오를 떠난 뒤 2022년 5월 플루토라는 바이오벤처회사를 설립하는데 여기서 파마리서치가 당시 신생법인인 플루토를 143억원을 들여 자회사로 편입한다.
씨티씨바이오에서 물러난 전 대표가 파마리서치라는 회사와 힘을 합쳐 다시 씨티씨바이오지분확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2023년 3~4월 파마리서치와 플루토가 씨티씨바이오의 지분을 사들였다. 방법은 전 대표가 경영권을 뺏길 때랑 같다. 5% 미만 지분을 조용히 확보한 뒤 단기간 장내매수로 단숨에 12% 이상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이렇게 파마리서치와 전 대표, 그리고 현 경영진 중 하나인 이민구 씨티씨바이오 회장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분쟁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씨티씨바이오의 최대 주주는 17.27%(11월 22일 기준)의 지분을 보유한 파마리서치다. 여기에 특수관계인 플루토 지분 1.05%를 합하면 총 18.32% 지분을 가지고 있다.
적대 관계인 이민구 씨티씨바이오 회장은 지분 11.97%와 100% 개인회사 더브릿지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3.36%를 합하면 총 15.33%다. 지분 구도에서는 2.99%P 차이로 표 대결에서 밀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 회장과 파마리서치 간 지분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2025년 1월 21일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통해 최종 판가름이 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신규 파마리서치 대표의 씨티씨바이오 이사회 입성 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내이사로 선임된다면 두 회사 간 경영권 분쟁은 파마리서치가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임총이 끝난 이후인 12월 20일 이민구 씨티씨바이오 회장 임기가 만료된다. 파마리서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파마리서치는 최대주주에 이어 사실상 이사회까지 장악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파마리서치가 유상증자를 통해 약 2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면서 “이 자금을 해외 인수합병(M&A)에 우선 활용한다고 밝혔지만, 일부를 활용해 씨티씨바이오 지분을 추가 매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씨티씨바이오는 2021년 적대적 M&A 이후 주가가 당시 급등하는 등 당시 1만 4000원선에서 유지됐지만 마찬가지로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하향곡선이다. 11월 22일 종가기준 주가는 7020원을 기록했다.
남매 분쟁 ‘유영제약’ 갈등 초미 관심
유영제약은 고(故) 유영소 회장이 1981년 한중제약을 인수해 설립했다. 창업주가 2007년 별세한 직후 2대 회장에 아내 이상원, 대표이사에 창업주의 장남 유우평 전(前) 사장이 올랐다.
당시 여동생인 유주평 재경팀 상무는 처음으로 회사 사내이사에 올랐다. 이후 인재관리 총괄 전무, 영업마케팅본부장 등을 거쳐 2017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유주평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에서 유우평 현 부회장이 돌연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자리를 내려놓기로 하면서 오너 2세 간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표 교체가 오너일가 간 갈등에 의한 것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경영권 향방이 ‘오리무중’이다. 유우평 전 대표가 사임을 종용당했다며 유주평 대표의 ‘경영권 찬탈’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해당 주장에 따르면 유우평 부회장은 유주평 현 대표의 협박으로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유우평 부회장·모친 이상원 회장, 그리고 여동생인 유우평 대표 간 갈등 구조다.
모친 이상원 회장은 법원에 유주평 대표 등을 임시주주총회 개최금지 및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해당 가처분 신청은 모친과 유우평 부회장이 자진취하했다.
관련 갈등은 우선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지만 유 부회장이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만큼 그 갈등 상황이 재차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오너 갈등에 상장폐지 위기 직면 ‘제일바이오’
제일바이오는 동물의약품 전문회사다. 심광경 제일바이오 회장이 지난 1977년에 설립한 제일화학공업이, 2000년에 제일바이오로 사명을 변경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심광경 회장은 창립 이래 회사를 경영 전면에서 이끌어왔지만 지난 2023년 4월, 장녀인 심윤정 전 대표가 심광경 회장을 대표이사 자리에서 밀어내면서 경영권 분쟁이 격화됐다.
심 회장은 심윤정 당시 대표의 직무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동시에 아내인 김문자씨가 임시주총 소집허가를 신청해 심윤정 전(前) 대표 해임안을 주요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에 질세라 심 전 대표는 심 회장 등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소했으나, 8월 진행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심 전 대표가 결국 해임됐다. 심 회장은 다시 대표이사에 오르게 됐다.
문제는 이렇게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오너일가의 횡령, 배임 혐의 고소 과정에서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했고, 이에 거래정지 상태에 ‘상장폐지’ 위기에 처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제일바이오는 금년 11월 20일까지 개선기간을 부여 받았다.
개선기간 종료일 이후 15일 이내 개선계획 이행결과에 대한 확인서를 제출하고, 상장폐지 심의를 받게 된다.
현재 개선계획 이행내역서를 제출한 상태로,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 상장폐지 여부를 심사받을 예정이다.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1월 10일 전까지 상폐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오너일가 경영권 분쟁으로 상폐 ‘기로’에 직면하게 되면서 업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영권 분쟁은 적대적 M&A에 직면하는 것은 물론 외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당장 회사 자체가 본업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본업에 영향을 주니 주가도 흔들린다는 게 업계 정론이다.
당장 투자은행 업계에서 경영권 분쟁은 통상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들의 주가를 올리는 등 주가에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킨다고 본다. 오너일가 및 대주주의 지분 매집 경쟁 때문이다.
분쟁 자체가 모멘텀으로 여겨지니 단기 시세차익에 치중된 투자가 이어지고, 소위 개인 투자자들도 사업과 무관하게 경영진 분쟁을 조장하는 등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실제로 경영권 분쟁이 종결되는 분위기가 나오는 경우 지분 매입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재료 소멸’이라는 명목으로 주가가 다시 하락한다. 투자자들도 이를 추종한다.
문제는 분쟁이라는 모멘텀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수 년 간 분쟁을 이어온 기업들은 사업 성과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주가가 하락해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시장 자체부터 장기적 가치보다 단기 급등만 쫓다보니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장기 정책, 기업 밸류업 프로젝트의 무용론에도 힘이 계속 실릴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과도한 경영권 분쟁을 계속 자극해 단기적 주가상승을 노리는 행동주의 투기세력, 사모펀드 등에 대해서 단기 가치만 쫓아서 분쟁을 오래가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주가가 하락하는 만큼 장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양성국 제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권 분쟁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서 “경영권 분쟁은 지분율 다툼이라 볼 수 있고 이 분쟁 과정에서 주식 매입 경쟁을 벌인다”라며 “단기적 주가를 상승 견인하는 데 일조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가는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라며 “이는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기업 내 불안정성 증가, 경영 효율성 저하, 기업 이미지 손상 등이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정부와 규제기관은 신속하고 공정한 해결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주주행동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현상을 고려하여 소액주주들의 권리 보호와 참여를 촉진하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부터 지속되고 있는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된다면 한미약품의 기업 역량이 훼손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라며 “상반기 실적 성장에도 연초 대비 주가가 하락한 것은 기업역량 훼손에 대한 투자자 우려가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