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장기화로 국내 의학연구가 주저앉는 가운데서도 게재료만 내면 논문을 실어준다는 일명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위‧과장 광고로 포장한 이들 학술지의 만행을 막기 위해서는 연구자와 연구비 지원기관 모두 논문 투고에 앞서 해당 학술지의 신뢰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유진홍 대한의학회지(JKMS) 편집장은 지난 7일 '약탈적 학술지에 대처하는 방법' 제하의 사설을 통해 약탈적 학술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처 방법을 제안했다.
약탈적 학술지는 논문 내용과 무관하게 게재료만 내면 논문을 실어주는 학술지들로, 논문 게재료를 통한 상업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지난 2021년 기준 전 세계 1만5000개 이상 약탈적 학술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현재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탈적 학술지는 연구자들에게 논문을 투고하라고 공격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반면, 논문 처리 과정이나 철회 비용에 측면은 불투명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는 "약탈적 학술지들은 합법적 편집 및 발간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학술지 콘텐츠 보관, 이해상충 관리, 수정 가능성, 저자 질의에 대한 적시 응답 등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한 경우에는 저자가 요청한 게재료를 지불해도 논문이 실리지 않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이들 학술지는 연구자를 현혹하기 위해 저명한 학술지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출판윤리위원회‧과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 회원이라는 허위 주장을 일삼기도 한다.
심지어 색인 및 인용 지표를 조작하고, 동의도 없이 관련 연구자들을 편집위원 또는 객원 편집자라고 내거는 경우도 있다.
유 편집장은 "약탈적 학술지는 과학의 진실성에 상당한 위협이 된다"며 "연구자들의 학문적 노력과 과학 연구의 신뢰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과학계 전체 발전을 저해한다"고 우려했다.
약탈적 학술지 피하기 위한 지침 숙지 필요…동료‧사서 조언도 도움
약탈적 학술지에 속아 논문을 투고하는 연구자들도 다수지만 의도적으로 논문 게재를 위해 이들 학술지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연구자들 승진 평가에 논문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 편집장은 "연구자들 중 특히 경력이 얼마 안 됐거나 경험과 적절한 멘토링이 부족하며 논문을 발표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한 이들이 약탈적 학술지에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약탈적 학술지의 피해자가 될 경우 개별 연구자뿐 아니라 소속 기관의 신뢰도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편집장은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연구자 스스로 양심에 따라 연구 과정의 원칙을 고수하는 한편, 논문 투고에 앞서 학술지의 신뢰성을 사전에 파악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약탈적 학술지들에 대한 정확한 목록은 없다. 약탈적 학술지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피하기 위해 경험이 풍부한 멘토, 동료, 사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평판 좋은 학술지 특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기관의 지침도 참고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가령 세계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WAME)에서는 저자가 논문 선택시 알아야 하는 실용적인 권장사항을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국립보건원(NIH)는 약탈적 학술지 구분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진홍 편집장은 "저자들은 이메일 주소와 URL이 합법적 단체의 주소와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직접 연락해 실제로 해당 학술지에서 작성됐는지 문의하는 게 유용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유 편집장은 "연구기관과 연구비 지원자도 연구자들이 약탈적 학술지를 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력 초기에 있는 이들에게 평판이 좋은 학술지를 파악하기 위한 지침 자료들을 제공하고, 교수진과 연구비 수혜자가 어디에 논문을 출판하는지를 정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연구기관 사서는 약탈적 학술지를 발견하면 해당 정보를 다른 기관의 사서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구와 공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