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핵심 인물인 교육부 및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일 함께 머리를 숙였다. 같은 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전공의들에 사과의 뜻을 전하며 그 무게는 한층 더해졌다.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전공의에게 수련‧입영 특례를 적용키로 결정한 동시에 2026년 의대 정원까지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실상 후퇴, 의료계가 앞으로 어떤 대응 방안을 내놓을지 관심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공개적으로 환영 입장을 내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지난 한 해 초지일관 요구한 2025년 증원 중단 사안이 이번에도 빠졌기 때문이다.
政 "2026년 의대 정원 원점 재논의" 시사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담화문 '의료계와 의학교육계에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다.
두 장관은 먼저 "의료계에 대한 비상계엄 포고령 내용은 정부의 방침과 전혀 다르다"며 "포고령 내용으로 상처받은 전공의와 의료진 여러분들께 진심 어린 유감과 위로의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또 의정갈등 장기화를 언급하며 "지난 1년 동안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잠시 뒤로 미루고 수련 현장을 떠나 고민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정말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2025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을 통해 복귀한 사직 전공의들에게는 기존의 '사직 후 1년 내 복귀 제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규정상 사직 전공의는 군 입대를 해야 하지만 복귀한 의무사관후보생은 수련을 마친 후 의무장교 등으로 입영할 수 있도록 조치할 방침이다.
이에 더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의료계와 함께 원점에서 유연하게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슷한 시각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의료에 헌신하기로 한 꿈을 잠시 접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전공의, 교육과 수업문제로 고민했을 교수와 의대생 여러분들께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의료계가 대화에 참여해서 논의한다면 2026년 의과대학 정원 확대 규모도 제로베이스에서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 중 의료계에 공개적으로 사과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단 전공의 비대위원장 "우리가 원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날 정부 발표에도 크게 반기거나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정부의 사과 대상으로 특정된 전공의들은 달라질 것이 없다는 분위기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자신의 SNS에 국민의힘에서 전공의 특례를 정부에 요청한 데 대해 "전공의들이 요구한 것은 그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정부와 여당은 아직까지도 전공의를 한낱 노동력으로만 치부하고 있다"며 "전공의 복귀 장애물은 무능한 여당"이라고 힐난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강행 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규모 재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모집 정지를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10월 SNS에 "대통령 고집으로 2025년도 의대 입시를 강행한다면 2026년도 모집 정지는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그는 지난달 19일 국회 교육위원장‧보건복지위원장과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만약 2025년에도 학생들이 휴학을 진행하면 과연 2026년도에 신입생을 뽑을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그에 대한 대책은 저희가 요구하지 않아도 이미 결론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2025년 의대 증원 중단과 더불어 첫 번째로 요구했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백지화, 즉 의료개혁 중단도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김택우 회장은 "지금 대통령이 궐위 상태이므로 대통령이 추진했던 모든 정책은 잠정 중단해야 한다"면서 "현재 추진하는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잠정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수도권 소재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인 A 교수는 "장관과 대통령 권한대행 등 정부 최고위급 인사가 전공의와 의대생 등에게 공개적 사과한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전공의 특례가 이번 복귀에 큰 영향을 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24년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앞서도 정부가 복귀 전공의에 대한 수련 특례를 발표했지만 지원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A 교수는 "정부가 이번 발표에서도 올해 7500명에 대한 정상적인 수업을 장담했지만 개강을 코앞에 둔 지금도 교육여건이 충분히 마련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 달 내 뚜렷한 변화가 없을 경우 전공의 수련은 물론 의대생 교육도 또 한번 공백이 생기며 사태가 더욱 장기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