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온전히 대학 자율에 맡기도록 방안을 추진한다.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이하 추계위)를 신설해 내년도 정원을 확정하기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내년 증원 규모는 최소 0명에서 최대 2000명까지 가능하지만, 지난해 각 대학이 희망했던 증원 규모가 2000명을 뛰어넘었던 전례에 비춰볼 때 의료계 기대와는 반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9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추계위 신설을 포함한 보건의료기본법,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을 심의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추계위 관련 법안에 '2026학년도 의대 정원 특례 조항'을 부칙으로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칙에는 '복지부 장관이 추계위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심의를 거쳐 2026학년도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대학의 장은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2026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 중 의대 모집인원을 2025년 4월 30일까지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즉 정부가 내년도 증원 규모를 결정하지 못 하면 대학이 자율적으로 증원 규모를 정하는 것이다. 단 '이 경우 대학의 장은 교육부 장관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정부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2월 내로 확정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냈으나, 지금 시점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추계위 법제화가 진행 중이지만 위원 구성과 의결권 부여 등을 두고 각계의 입장차가 커서 신설에 진통을 겪고 있는 데 더해, 추계위가 신설된다고 해도 필요 의료인력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3~4개월의 시간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년도 의대 정원 결정의 마지노선에 대해 "교육부 장관은 2월말이라고 했는데 지난해 2000명을 1509명으로 낮춘 건 4월 말"이라며 2월 내 확정은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부칙에 따라 추계위와 보정심을 통해 의대 정원이 이르게 확정되지 않으면 대학들은 총 증원 규모를 최소 0명에서 최대 2000명까지 자율적으로 정하게 된다.
의료계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의료계는 지속해 증원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으나, 대학 입장에서는 현 증원분을 유지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교육부가 지난해 3월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입학정원 수요조사를 한 결과, 대학들이 총 3401명의 증원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 수요조사 결과를 이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추진하는 데 있어 주요 근거로 삼았다.
이에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19일 각 대학 총장에게 2026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최소치인 '0명'이 돼야 한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KAMC는 이 공문을 통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2024학년도 의대 정원인 3058명으로 재설정하고 2027년도 이후 의대 정원은 추계위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기존 증원분이 유지돼 학생 복귀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의사 배출이 어렵고 2026년에 1학년 학생 수가 1만2000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도 더해졌다.
이에 복지부는 이날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원칙적으로 보건의료기본법 개정 또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을 통해 추계위에서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학이 자율로 결정하는 방안에 대해 "추계위를 통한 결정이 어려운 경우에 대비해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 또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 부칙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 논의가 진행 중이며 법률안이 개정되는 즉시 하위법령을 정비함과 동시에 추계위 구성을 준비해 조속히 추계위가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19일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추계위의 구성 및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과 2026학년도 정원에 대한 대학 총장과 의대 학장 간 이견 고려 필요성 등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 가운데, 6개 법안에 대해 계속 심사 결정이 내려졌다.
정부가 제안한 대학의 자율 결정 방안과 의료계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후 재심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