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6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조건부 동결’을 선언하면서 의정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우려감으로 변질되는 분위기다.
‘동결’이라는 명제를 놓고 이해 당사자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수련 및 교육현장은 정상화가 요원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7일 “3월 말까지 의대생 전원 복귀를 전제로 2026학년도 모집인원에 대해 총장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해달라는 의학계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증원’이라는 강경책에서 상당히 물러선 행보로, 의료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지지를 받으며 의정사태 해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문제는 ‘정원 동결’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이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우선 교육부와 의학계는 증원 이전인 3058명을 ‘동결’로 보고 있다. 올해는 부득이 일부 증원이 이뤄졌지만 일단 2026년에는 그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게 ‘원점’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학장들은 최근 의대생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전 수준인 3058명으로 확정해 달라고 교육부에 건의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의학교육에 관한 정책 입안과 조정, 대안 개발 등을 수행하는 한국의학교육협의회 역시 내년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설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의과대학이 있는 전국 40개 대학 총장들이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는 방안에 공감했고, 급기야 교육부가 이들 주장을 전격 수용했다.
다만 집단휴학 상태인 의대생들의 전원 복귀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주호 장관은 “3월 말까지 의대생이 복귀하지 않는 경우 2026학년도 모집인원을 2024학년도 정원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안은 철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 의학계 요청 전격 수용…현상황 유일한 탈출구 기대감
의대생들, ‘전면 백지화’ 등 다른 시각 피력
하지만 정작 의대생들은 교육부와는 다른 기준점을 고수하고 있다.
의대생들은 기존 정원(3058명)을 유지하는 것에 더해 2025학년도 증원분(1509명)까지 감축한 1549명으로 2026학년도 정원이 정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증원 사태 이전으로 회귀하는 게 ‘원점’이라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요구가 수용되기 전까지는 수업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실제 정부의 이번 ‘정원 동결’ 발표에도 반응은 냉랭하다. 교육부가 제시한 3058명은 온전한 동결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의대생들은 앞서 전공의들이 제시한 7대 요구사항까지 정부가 수용해야 복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해 2월 집단사직에 들어가면서 △필수 의료정책 패키지 및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행정명령 전면 철회 및 정부 공식 사과 등을 요구한 바 있다.
증원 백지화는 복귀 조건의 일부에 불과하고, 필수의료 패키지 철회와 복지부 조규홍 장관, 박민수 차관 등 책임자 공식사과 등이 이뤄질 때까지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국회 교육위원회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전국 40개 의대의 수강신청 인원은 4219명에 그쳤다.
10개 대학에서는 단 1명도 수강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10개 대학에서는 2025학번 신입생부터 본과 4학년까지 모든 학년에서 수강 신청자가 없었다.
의대생 미복귀에 따른 수업 파행이 불가피해지면서 주요 의대들은 3월 중순 이후로 개강을 미루거나 4월까지 수업을 하지 않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2026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0명'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최근 열린 전국시도의사회장단 회의에서 “2026학년도에는 의대생을 한 명도 뽑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는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2026년도 모집인원은 기존 확대안인 5058명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주호 장관은 “3월 말까지 의대생이 복귀하지 않으면 3058명 동결 방안은 당연히 철회되고 내년 입학정원은 당연히 5058명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의대생 복귀가 지연될 경우 학칙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그는 “올해는 학사 일정 변경 등의 별도 조치는 없을 것”이라며 “학생들이 복귀하지 않는다면 학칙에 따라 학사 경고, 유급 재적 등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4월 이후에는 복귀를 희망한다 하더라도 원하는 시기에 학교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이번 조치가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했다.
정부의 ‘정원 동결’ 방침에도 의정갈등 해소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시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계 한 인사는 “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을 두고 이해 당사자들이 아전인수식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탓에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 정원 규모를 논의할 추계위 출범까지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며 “올해도 의학교육이 파행될 경우 의료시스템 붕괴는 가속화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