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전문심리위원으로 참여했던 의사가 이후 동일한 환자에게 다른 내용의 진단서를 발급해 환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판사 박광민)은 지난달 26일 환자 A씨가 의사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와 이에 맞서 B씨가 제기한 반소를 모두 기각했다.
사건은 A씨가 지난 2019년 9월 발생한 교통사고로 가해자 측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이 사건에서 의사 B씨는 법원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돼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당시 A씨 무릎 부분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하는 데 해당 사고가 미친 영향(기여도)이 20%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여러 사정을 종합해 사고 기여도를 50%로 판단하고 가해자 측 보험사에 일부 책임만 인정했다.
A씨는 그로부터 약 1년 6개월이 지난 2024년 1월 B씨가 근무 중인 병원을 찾아 외래 진료를 받았는데, B씨는 사고 기여도를 90%로 본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했다.
A씨는 이 진단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지만, B씨가 법원 사실조회 요청에 답변하면서 진단 내용을 부인했고, 재판부는 이 진단서를 신뢰할 수 없는 자료로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항소는 기각됐고, 1심 판결이 유지됐다.
이에 A씨는 "전문심리위원 시절 제출한 의견과는 정반대 진단서를 발급하고 이후 사실 조회에서 진단 내용을 스스로 부인해 금전적‧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액 약 9361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의사가 다른 판단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인 B씨의 의견 진술에 현저한 잘못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전문심리위원의 의견 진술은 어디까지나 법원의 판단을 돕는 하나의 요소일 뿐 절대적인 기준도 아니므로 의견 진술로 인해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한 법원은 A씨가 주장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과 달리 의료인은 환자의 주관적인 호소에 더 중점을 두고 진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또 환자의 상태와 자료가 의견 진술 때와 동일하게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의학적 판단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의사 B씨가 의견 진술과 다른 내용의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반대로 의사 B씨는 A씨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고소와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해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2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 또한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환자가 진료받을 때 의사에게 과거 의학적 판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미리 알릴 신의칙상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 민원으로 인해 B씨 명예가 실질적으로 훼손됐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재판부는 "양측 주장은 불법행위 성립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며 두 사람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