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출범한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집행부는 전공의와 의대생을 포용하며 의료사태 해결을 위한 단일창구로서 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모으며 출발했다.
실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부회장으로 임명하고, 대전협 출신이 의협 상임이사로 대거 합류했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최초로 의대생이 임원으로 임명됐다.
의료사태의 키를 쥐고 있는 주역들이 모두 집행부에 입성하면서 의협은 명실공히 의료계 대표단체로서 위상을 회복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집행부 출범 3개월이 지난 지금, 의정 갈등은 여전히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갑자기 내민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동결’을 두고 내부에선 설왕설래하고 있다.
이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잠잠했던 의료계는 의대 정원 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 철회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 등이 포함된 투쟁로드맵을 내놓았다.
교육부 ‘2026년 증원 0명’ 카드 놓고 설왕설래
교육부는 지난 3월 7일 “이달까지 의대생들이 복귀할 경우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내민 ‘2026학년도 증원 0명’ 카드를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2024, 2025학번 7500명을 동시에 교육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의대생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택우 의협 회장은 지난 3월 8일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 전체회의에서 ‘2024, 2025학번을 동시에 교육하기 위해서는 2026학번을 한 명도 뽑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현실적으로 고민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이어 “의협이 2024, 2025학번의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으나 정부가 제대로 된 계획을 내놓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 등이 다수 포함된 강경파에서는 정부가 24·25학번을 동시에 교육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않았다며 정부 제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협 부회장)도 교육부의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 조건부 동결 발표가 나온 날 자신의 SNS에 “교육부 대책은 또 다시 5.5년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7500명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대안도 없이 신입생 선발부터 걱정하는 모습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의협이 강경론에만 치우치지 말고 현실적인 협상안을 내세우라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내년도 의대 0명 모집’ 주장에 반대 입장을 밝힌 시도의사회장들이 적잖다.
‘신입생을 한 명도 뽑지 않겠다’는 주장 자체는 현실성이 적어 갈등이 더 길어질 가능성이 있고, 조기 대선 등 변수가 많은 점을 고려했을 때 금년 상반기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시도의사회장들 사이에서 교육부 동결안 수용 여부에 대해 물으면 반대가 찬성을 조금 앞선다”며 “이 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내년도 신입생 모집 인원이 ’0명‘이 되면 의대 준비를 하는 고3 수험생들의 수험 권한 자체가 박탈되고, 소송도 이어질 수 있다”며 “의협은 사회에서 더 고립될 가능성이 높 다”고 관측했다.
실제 공식 석상에서 의대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고, 이들의 의사 결정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이제는 침묵하는 전공의와 의대생들 의견도 수렴해야 할 때”라며 “강경한 한 명이 아닌 전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전공의, 의대생들이 불확실성에 지쳤다”며 “무정부에 가까운 현 시점에서 의협은 협상안을 갖고 대화 테이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장도 “돌팔매질 당할 각오하고 의사 중에 아무도 못할 얘기를 한마디 하고 싶다”며 “의대생 중에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일부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로 들어가고 싶은 의대생들도 집단 따돌림이 걱정되서 못 가는 일이 있다고 들었다”며 “이건 아니라고 본다. 또한 이제 의료일원화 등 여러 대안을 모색해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김택우 회장, 취임 후 돌파구 모색
임현택 전(前)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로 당선된 김택우 집행부는 취임 후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김택우 회장은 특유의 온화하지만 강단있는 성품으로 의사사회 내에서 높은 지지를 받아 선출됐다.
1년을 넘긴 의정갈등을 해결해기 위해 의대생, 전공의, 개원 의, 봉직의, 교수 등 전(全) 직역 화합을 도모, 의협을 핵심 소통 채널로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치권과 정부도 새로운 집행부와 호흡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김택우 의협회장을 비공개로 만나 의대 정원과 관련한 논의를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2026년도 의대 정원 ‘감원’ 가능성을 열어두며 의협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치권도 분주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2월 14일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의협 인사들도 참여했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의 주선으로 지난 2월 17일에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김택우 회장, 박단 부회장 등이 면담을 진행, 의료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과도 면담을 진행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월 10일 국회에서 의협 측 인사를 만나 의대 정원 문제를 포함한 의정 갈등 해소 방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처럼 취임 후 의정갈등 해소를 위해 발로 뛴 김택우 집행부가 ‘내년 의대생 선발 0명’이란 논쟁적인 이슈를 딛고 순항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게다가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 것이다.
의협은 윤 정권에서 추진해왔던 의료정책 중단 촉구를 위한 투쟁로드맵을 마련, 본격적인 활동에도 나설 계획이다.
지난 4월 4일 저녁 긴급이사회를 열고 같은 달 13일 전국 의사대표자회의를, 한 주 뒤인 20일에는 전국 의사들이 모이는 집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먼저 오는 13일 열릴 전국대표자회의에서는 의대교수와 개원의, 전공의 등 의료계 전(全) 직역이 참여한 가운데 현 상황을 공유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후 20일에는 서울에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전국 단위 집회를 열어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해체와 의정갈등 책임자 문책을 강하게 요구할 계획이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전국 의사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기 위한 집회를 준비한다”며 “의료정책 및 의료정상화를 촉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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