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정부 의료정책이 빈약한 근거와 정치적 논리에 기반해 추진되면서 국내 의료체계와 시스템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들이 단기적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장기적인 의료시스템 안정성을 희생시키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환자들은 물론 의료진까지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런 경향에 방점을 찍은 것이 바로 2024년 2월 추진된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다.
보건복지부 발표 후 전국 의대생은 물론 수련병원 인턴,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던지고 진료현장을 떠나 정부와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수많은 유무형 피해들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실제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발표한 ‘의료공백으로 인한 재정 투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으로 의료공백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 3조 5000억 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됐다.
특히 올해도 의정 갈등이 계속돼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할 경우 건강보험 누적 적자액이 1조 7000억 원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와 의료계 대화·협의 사실상 ‘실종’
수많은 문제 제기가 있지만 의대 정원 확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절차적 과정 실종은 물론 정치 논리 우선, 그리고 전문성이 배제됐다는 점이다.
정부의 최근 의료정책은 종종 전문가들 의견을 무시한 채 정치적 논리에 따라 추진하는 경향이 짙다. 주요 의료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학계와 보건 전문가들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정책의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채 시행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는 정책 실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의료시스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의과대학 정원 증원 사안도 발표 직후 부족한 근거 등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의료계는 절차적 문제와 근거 등을 지적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의료계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정심에서 2000명 증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요식 절차만 거친 후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2000명 증원 정책 근거는 물론 의료계와의 소통이 사실상 전무한 대통령실의 일방적 정치적 논리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의료계 석학단체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역시 "2020년 9월, 정부가 대한의사협회와 ‘의대 정원 정책은 의료계와 합의해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위반해 정부 정책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대학 입시를 불과 수개월 앞두고 논의와 합의 과정 없이 극단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점은 가히 폭력적이라며 정치적 논리에 의한 정책 추진을 힐난했다.
당시 정부가 정원 확대 근거로 들었던 연구보고서는 3가지였다.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홍윤철 서울대학교 교수, 2020년) ▲2021년 장래인구 추계를 반영한 인구 변화의 노동·교육·의료 부문 파급효과 전망(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2023년)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 추계 연구(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0년)이다.
그 당시 의학한림원은 2024년 3월 22일 2000명 증원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근거는 인구 변화만을 단편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편향적으로 선택, 왜곡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해당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진들마저 논문이 2000명 근거는 아니었으며, 일부 증원이 필요하긴 하지만 급진적인 증원은 문제점이 많다며 한발 물러서 정부 근거로 자신들 논문이 인용된 것에 대해 데 부담감을 피력했다.
결국 정부의 근거 부족은 의료계 반발을 더욱 강하게 불러왔고, 정부 의대정원 정책의 추진 동력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렇듯 정치 논리에 기반한 의료 정책은 의료시스템 근간을 흔들고 있다.
대형병원은 물론 중소병원, 개원가까지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수시로 운영 방식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의료서비스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또 의료인력의 과도한 업무 부담과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해 이직률이 증가하고, 이는 다시 의료 서비스 공백을 초래하는 악순환의 반복을 야기시키고 있다.
특히 지방 수련기관인 국립대병원은 정부 정책을 거부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지녀 지역사회 의료 접근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이는 결국 수도권과 건강 격차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의료계 전문가 “시스템 붕괴된다” 경고
의료계 전문가들은 "정부 의료정책이 과학적 근거와 전문가들 의견을 기반으로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논리에 따라 정책이 추진될 경우, 단기적인 성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의료 시스템 전체가 무너질 위험이 높다고 누차 경고해왔다.
또 정부는 의료정책을 수립할 때 의료 현장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정책 실효성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지닌다.
의료계 관계자는 “빈약한 근거로 추진된 정치 논리에 기반한 의료 정책은 국내 의료체계와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정책을 수립할 때 과학적 근거와 전문가들 의견을 존중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료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의료시스템 붕괴는 물론 국민 건강에 대한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수 있으며, 이제는 정치적 논리를 넘어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하는 의료정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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