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연속 근무시간 상한을 조정한다면 전날 근무와 당직 포함 24시간에 다음 날 아침 환자 인계와 교육, 데일리 컨퍼런스 등에 최소 4시간의 추가 연속 근무를 포함해서 28시간 정도는 돼야 한다.”
박용범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는 9일 의학회 e-레터를 통해 ‘최근 전공의 수련 관련 법안 발의안에 대한 분석과 제안’을 공개하고 전공의 수련시간에 대한 의학회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의학회와 26개 전문과목학회 수련교육이사들이 최근 회의에서 도출한 내용으로,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수련의 ‘질’을 담보하지 않은 무리한 단축이 오히려 전문의 양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올해 초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약칭 전공의법) 일부개정법률안’ 2건이 발의된 데 따라 관련 사안에 대해 논의한 결과를 공개했다. 관련 개정안은 김윤 조국혁신당 의원(1월 7일 발의)과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3월 10일 발의)이 각각 발의했다.
박용범 이사는 “우리는 미국을 벤치마킹해서 주 80시간을 최대 상한으로 둬 연속 근무시간 상한을 현재보다 조정한다면 28시간 정도는 되어야 한다”며 “양질의 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련 시간 확보가 필수로, 주 80시간 유지는 전제돼야 함이 일치된 의견”이라고 밝혔다.
다만"휴게시간이 수련시간에 산입될 경우,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휴식시간의 보장이 어려울 수 있고 수련시간 부족이 예상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전공의, 근로자 겸 피교육자 위치 동시 고려해야"
박 이사는 “단순한 근로시간 기준으로 수련 환경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공의는 피교육자이자 동시에 의료기관 내 필수 인력으로, 단순한 노동시간 단축이 아닌 교육과 임상 경험이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공의 교육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전문의 양성과 직결되는 문제로, 수련시간을 줄이기 전에 어떤 역량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며 “교육의 질적 담보 없이 단축부터 이뤄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전공의 교육 현장은 주 80시간을 기준으로 수련 프로그램이 구성돼 있다. 이를 무리하게 축소할 경우, 현재와 같은 수련 기간 내 충분한 진료 경험과 술기 습득이 어렵다는 것이 의료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일부 수술 중심 전문과목에서는 “80시간 수련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 이사에 따르면 흉부외과는 환자의 바이탈을 다루는 과로, 주 80시간 수련도 부족하며 실제 학회에서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주 80시간으로 4년을 수련했을 경우 완성해야 할 업무를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50% 이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복지부, 시범사업 관련 전공의 공백 등 구체적인 대책 부재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시범사업에는 전공의 수련 공백을 메우기 위한 추가 인력 투입이나 전문의 배치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전문과목에 따라 주 80시간의 수련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더 줄이게 된다면 수련 자체가 불가하다고 보는 과들도 다수 존재한다는 전언이다.
회의에 참가한 외과계 학회 관계자는 “수술 중 시간 됐다고 교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입원전담전문의도 수술방에는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체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단축 논의는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현재 우리나라 전공의 교육과정은 표면적으로 전체적 구성요소를 유지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수련 과정에서는 기관별 교육 여건과 질적 차이가 크고, 근로자와 피교육자의 이중 신분 중 근로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돼 실제 임상 현장에서 수련교육에 집중할 여력이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임상 현장은 전공의가 주 80시간 이상 초과 근무하기도 하며, 수련 초기에는 술기 교육 부족으로 인해 환자 안전과 피교육자의 안전한 수련환경을 위협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또 수련환경 평가는 과정에 대한 평가와 수련의 질적 내용에 대한 평가보다 수련 규정 준수와 시설 평가 등 구조적 평가에 더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수련의 역량 성취에 초점을 둔 현장 바탕 평가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결국 국가별 수련제도는 상이하고 각자 추구하는 목적이 달라, 우리나라 현황에 맞는 장기적인 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박 이사는 “수련체계의 구조적 한계와 내실 있는 운영이 담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수련기간에 대한 변화는 제도의 질적,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기보다 현재 한계를 그대로 가져가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수련기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련 프로그램 질이며, 수련의 질(質) 담보가 제도적 변화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