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막하출혈 증상을 호소하던 환자에게 추가 검사를 하지 않아 진단이 지연된 의료 과실에 대해 법원이 병원 책임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본 재판부는 병원 측에 유족들에게 총 2억47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판사 김창현)은 지난 3일 A씨 배우자와 자녀들이 김포시 소재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병원이 배우자에게 1억616만6877원, 두 자녀에게는 각각 7077만7918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19년 1월 말부터 지속적인 두통과 어지럼증, 구토 등의 증상으로 해당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은 뇌척수액 검사에서 색깔이 주황빛을 띠고, 적혈구, 백혈구, 총단백 수치에서도 이상 소견이 나타났으나 뇌수막염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없다고 판단해 이틀 뒤 A씨를 퇴원시켰다.
하지만 A씨는 퇴원 후에도 증상이 계속됐고, 2월 17일 새벽 경련을 일으킨 후 응급실로 이송됐다. 이송 직후 시행된 검사에서 지주막하출혈이 확인돼 응급 수술이 시행됐으나 A씨는 이후 우측 편마비와 실어증, 삼킴곤란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2023년 1월 사망했다.
유족들은 병원 측이 1차 입원 당시 뇌혈관 CT나 MRI 등 추가 검사를 하지 않았고, 퇴원 후 증상이 지속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원은 병원 측의 의료상 과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지주막하출혈이 있더라도 뇌 CT 검사에서는 정상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고, 뇌척수액 검사에서 적혈구가 검출됐다면 지주막하출혈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A씨에 대한 뇌혈관 CT나 MRA, MRI 등의 추가 검사를 했어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퇴원 당시에도 환자에게 적절한 지도 설명을 하지 않은 점도 과실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가 두통, 오심 등과 같은 증상이 지속될 경우의 대처 방법, 추가 검사의 필요성 등에 관해 충분한 설명을 했어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밝혔다.
병원 측은 뇌척수액의 적혈구 증가가 외상성 천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적혈구 수치가 마이크로리터당 1만2000개로 지주막하출혈과 외상성 천자의 가능성이 모두 있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병원 측은 A씨가 퇴원 당시 "머리가 조금 개운해졌다"고 말한 점을 들어 증상이 호전됐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는 대증 치료에 따른 일시적인 증상 완화일 뿐"이라고 봤다.
결국 법원은 병원 측의 과실과 환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1차 입원 또는 외래 진료 당시 지주막하출혈을 진단해 조기에 치료했다면 후유증이 경미하거나 예방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의료진의 진료상 과실로 인한 손해를 유족들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면서 병원 측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지주막하출혈 자체는 병원 과실 없이 발생한 질환이고, 환자에게 뇌동맥류의 기왕증이 있었으며, 조기 치료를 받았더라도 완전한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