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美진출 2라운드 '영주권 쟁탈전'
2007.04.20 23:11 댓글쓰기
2년 전, 바쁜 시간을 쪼개 어렵사리 미국의사자격증을 따낸 서울의 한 소아과 개원의 J씨. 그러나 미국 진출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다. 비자는 물론 영주권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J씨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는 했지만 정보도 통 없고 답답한 시간만 보내고 있다”며 “솔직히 영주권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돈은 문제도 아니”라고 토로했다.[편집자주]

국내 의사들의 미국 진출 제2라운드가 펼쳐지고 있다. 가능한 빨리 영주권을 획득하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미국 진출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단지 경력 중 하나로 미국의사자격증을 필요로 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국내 의료환경에 환멸을 느끼고 이민을 결심, 적극적으로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개원의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2010년에는 미국 내 의사가 5만명이 부족하고, 2020년에는 20만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미국의학협회의 추산은 미국 내 개업의 꿈을 한층 희망적이게 한다. 이처럼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이민을 결심한 의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J씨처럼 영주권 취득이다.

‘가능한 빨리’영주권 취득이 관건

미국에서 개업을 하려면 미국 영주권은 필수적인데 이를 취득하는 과정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해 영주권을 취득할 것이 아니라면 H-1(취업비자)비자나 J-1(문화교류비자) 비자를 받아야 미국 내 의사로 취업이 가능하다. 미국의사자격증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H-1 비자를 바로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J-1 비자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J-1 비자는 H-1 비자로의 전환을 원할 경우 등 의무 귀국 조항이 존재, 본국으로 돌아가 2년간 체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물론 의사들의 경우에는 NIW(Nationa Interest Waver)이라고 해서 전문적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미국 노동부의 허가 절차를 면제 받으면 영주권 취득 시기가 상당히 단축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전공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뛰어난 연구실적이나 수상경력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극소수에게만 해당되는 혜택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결국, 미국의사 자격증과 영주권 취득은 별개의 과정으로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주권 획득을 위해 이렇다 할 방법이 없이 꽤 긴 시간을 발만 동동 구르며 보낼 수 밖에 없다.

K씨는 미국치과의사자격증을 갖고 여러 차례 영주권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생각하다 못해 K씨는 E2(투자비자) 비자로 일단 개업부터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생활을 해 왔는데 무작정 국내로 돌아가 개업을 하는 일도 마땅치 않았고 그렇다고 마냥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었던 것.

그러나 E2 비자는 아무리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했다고 할지라도 영주권 취득과는 무관한 비자다. 개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K씨는 또 다시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어쨌든 개업은 했지만 자식들의 신분 보장이 되지 않은 것이다.

L씨는 J-1 비자로 미국에서 연수를 받으며 적절한 시기에 영주권을 취득, 미국에 새 둥지를 틀 계획이었다. 그러나 영주권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고 의무 귀국 조항에 걸려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잠시 접고 싫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귀국했지만 이미 미국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도 흥미를 잃어 학업이나 친구를 사귀는 일에 문제를 겪고 있는 것. “미국과 한국, 둘 중 어디 하나에도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라고 L씨는 말했다.

영주권 취득이 이렇게까지 ‘전쟁’이다 보니 ‘정공법’ 보다는 변칙을 개발, 각광을 받고 있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H-1 비자, J-1 비자가 아닌 EB2(취업이민 2순위) 비자를 받고 스폰서를 활용해 영주권을 취득하는 방법이 그 중 하나다.

스폰서 활용한 기발한 '변칙' 등장

이 방법을 처음 고안한 송현주씨는 자신 역시도 국내 간호사 출신으로 영주권 취득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영주권을 획득, 현재는 메디컬센터를 운영 중인 그는 일종의 ‘EB2 비자 취득을 위한 한-미 연결 시스템’을 구축, 국내 의사들의 영주권 획득을 돕고 있다. 송씨는 미국에서 일을 진행하고 한국에서의 업무는 모 대학병원 간호사가 담당한다.

송씨가 개발한 이 과정은 모두 8단계를 거쳐 영주권을 취득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비자가 발급되기까지는 13~19개월 정도가 걸린다.[표 참고] 일반적인 EB2 비자 취득 과정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송씨가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의 가장 큰 차별점은 이민비자 취득 과정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스폰서, 즉 고용주가 이미 확보돼있다는 점이다. 취업이민 비자는 미국으로 들어오려는 인력을 고용코자 하는 의료기관의 신청이 있어야 진행될 수 있는데 송씨는 이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송현주씨는 “영주권을 원하는 특정 인물을 상대로 취업 공고를 낼 병원이 확보돼있다”며 “한 번에 15명 정도까지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A씨가 미국 이민을 희망한다면 송씨는 A씨와 계약, 자신과 이미 계약돼있는 미국 내 의료기관의 이름으로 구인 광고를 내고 A씨의 이력서를 접수시킨다. 이후 미국 노동부와 이민국 등의 검토는 인터뷰 없이 서류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이민국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차근차근 제출하면 된다. 송 씨는 “서류가 반송되는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며 “신청자는 현지에 없어도 취득 과정을 밞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빠르면 10개월 정도 이 과정을 거쳐 이민비자가 나오고 이들은 병원의 일반 행정직 등의 업무 종사 희망자로 분류돼 취업하게 되지만 곧 의사로 근무할 수 있다. 이미 송씨와 계약돼 있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정부에 ‘전문직(의사)이 필요해서’라고 사유만 밝히면 충분히 전향이 가능하다는 것.

실제 취업 못해도 비자 살아있어 미래 준비 용이

더구나 이 시스템은 당장 이민을 떠나지 않고 먼 미래를 준비하는 의사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취업 비자가 나온 뒤 실제 취업을 하지 않아도 비자는 계속해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대신은 이 경우 벌금을 내야 하는데 약 1만달러(1천만원) 수준이다. 송씨는 “미국의 경우 벌금을 내는 것은 제도를 어겼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으로 본다”면서 “영주권 취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벌금만 내면 영주권을 얻는데 문제될 것은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를 통해 이 같은 방법으로 영주권을 받은 의료인이 이미 80여명이 넘었으며 3월 현재 5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영주씨는 “차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됐다”면서 “영주권 취득 후에도 실제 취업 기회나 개원 과정을 알려줘 자리를 잡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미국 영주권 취득 문제. 최근 개원의사들까지 미국 진출의 꿈을 키우면서 영주권 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향후 송씨의 시스템처럼 정공법은 아니지만 측면을 공략하는 사례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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