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자격 취득·경력에 필요, 외부 발설 못 해"
2차대전 이래 '의학계 관행'···주무부처·해당 병원은 "무급의 없다"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젊은 의사의 상당수가 진료와 수술 등으로 밤늦게까지 혹사를 당하는데도 월급이 아예 없거나 고작 1만엔(약 10만원) 안팎의 당직료밖에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급여를 받지 못하는 일본의 이른바 '무급의'(無給醫) 실태 일부가 이달 초 NHK의 특별 취재를 통해 밝혀졌다.
"의학계의 터부인 대학병원의 무급의 문제를 파헤칠 거냐?" "학비를 내면서 진료에 종사하는데도 막차를 타고 귀가하는걸 당연시하는 생활이었다." "우리 병원도 책임자가 우리 대학에 무급의는 없다(없는 걸로 하기로 돼 있으니 무급의라고 회의에서 말하지 말라)고 말한 것 같다."
NHK가 도쿄(東京) 의과대학이 10년 이상이나 여성 지원자들을 불리하게 차별한 사실이 적발된 것을 계기로 '무급의' 문제를 특집 뉴스로 내보낸 후 의료 현장에서 쏟아진 의견의 일부다.
한 현직 여자 외과의사는 "4년전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 임신하자 출산휴가를 쓴다는 이유로 자리를 후배에게 내주라는 지시를 받고 무급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 의사에 따르면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중 급여를 받는 의사는 제한돼 있으며 젊은 의사와 여의사처럼 자녀양육 등으로 근무에 제한을 받는 의사는 무급으로 일하는 경우가 있다.
그 자신도 출산휴가가 시작될 때 까지 기존과 마찬가지로 수술과 외래진료를 했는데도 "무급 근무"였다. 더욱 곤혹스러운 건 급여를 받지 못해 취업증명을 갖추지 못하는 바람에 자녀를 보육원에 넣지 못한 일이었다. 복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공무원을 비롯, 사회 각 분야가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애초 일부 대학병원에 국한된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했던 '무급의'가 "대학병원에서 무급은 흔히 있는 일"이라거나 "나 자신도 무급이었다"는 증언이 취재과정에서 잇따랐다.
익명을 조건으로 취재에 응한 경력 10년이 넘은 한 남자 의사는 "눈앞의 환자를 치료해야 겠다고 생각하지만 피곤함에 찌들었다.
의료현장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급여를 주지 않는 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9월 급여명세서에는 기본급란이 아예 없었다. 지급된 돈은 당직료 1만 엔이 고작이었댜. 생활비는 다른 병원에서 외래나 당직 아르바이트를 해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속해 있는 대학병원의 경우 다른 많은 진료과에서도 절반 가량은 무급이라고 한다.
진료를 하는 의사가 왜 무급으로 일할까. 이 남자 의사에 따르면 대학병원에서 의사 경력을 쌓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일반적인 의사의 경력은 ①의대를 6년만에 졸업, 국가시험을 본 뒤 의사면허 취득 ②2년간 '연수의'로 다양한 진료과에서 근무(이 기간에는 월 30만 엔(약 300만 원) 정도를 지급) ③대학병원 의국에 소속돼 '근무의'로 근무. 3~5년에 걸쳐 '전문의' 자격취득을 목표로 경험을 축적하거나 대학원생으로 연구 ④조교나 강사, 준교수(조교수), 교수 취임 등이다. 취재에 응한 남자의사에 따르면 이중 무급의가 가장 많은 과정은 ③이다. 이 기간은 이른바 젊은 의사의 '밑바닥 생활'기간으로 간주된다.
대학병원의 입장에서는 최첨단 의료 현장에서 '교육·연수를 시키기 때문에' 무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은 이런 설명과는 달랐다.
젊은 의사는 외래와 응급환자 처치, 당직 등 격무를 담당하는 대학병원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전력'이다. 속해 있는 의국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전문의 자격을 따지 못하고 최신 의료를 접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 일반 병원으로 가고 싶어도 의국의 소개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의사들은 무급으로 일하면서도 내놓고 불평을 하지 못한다.
젊은의사 무급근무는 의학계에서는 2차대전 후 관습으로 계속돼 오고 있다. 1968년에 시작된 도쿄대학 분쟁을 계기로 촉발된 학생운동도 당시 무급으로 일하던 '인턴제도'의 부당성을 호소한 의과대학생들의 동맹휴교가 계기였다.
정부도 2004년에야 겨우 현재의 연수 제도를 만들면서 의대 졸업후 2년간은 급여를 지급하도록 했다. 그러나 3년째 이후의 실태는 별로 개선되지 않은 채 무급이나 형편없는 저임으로 근무하는 관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급의의 존재에 대해 대학병원 주무부처인 문부과학성은 무급을 증언하는 의사가 여러 명 있다는 NHK의 전언에 "무급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회신을 내놓았다. "6년 전 대학병원에 대한 조사에서 진료를 하는 모든 의사가 고용계약을 맺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의사의 근무방식 감독부처인 후생노동성은 "무급의가 존재한다면 노동기본법 위반일 가능성이 높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편 여의사가 임신을 이유로 무급으로 일했다고 증언한 대학병원 측은 NHK의 질의에 "본 대학 부속병원에 무급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문의를 계기로 조사를 할 방침"이라면서 "현 시점에서 대답은 자제하겠다"고 논평했다.
후생노동성 '의사 일하는 방식 검토회의' 부좌장을 맡은 시부야 겐지(渋谷健司) 도쿄대학 교수는 "한계를 느낀 젊은 의사들이 대학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고 "이런 관습에 의존하는 건 지속불가능하다"는 말로 이대로 가면 의료체계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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