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 교외에서 불임 클리닉을 운영하다가 지난 2017년 89세로 사망한 얀 카르바트가 네덜란드 국민들을 충격에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지난주까지 확인된 DNA 검사 결과에 따르면 카르바트는 인공 수정을 통해 최소 49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확인됐다.
정원사로 일하는 마르테인 판 할렌(39)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기증받은 정자를 통해 태어났다는 말을 전해듣고 2년전 미국 DNA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다고 한다. 그는 "몇주 뒤에 나는 25명의 이복 형제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네덜란드의 한 기관이 카르바트의 아들 1명의 DNA 프로필을 조사했고 올해 2월 로테르담 법원으로부터 이를 공개해도 좋다는 판결도 받아냈다.
법원은 카르바트의 아내가 주장하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기각하고 카르바트로부터 인공수정 시술을 받은 부모, 그의 후손으로 의심되는 자녀들에게 공개할 것을 명령했다.
판 할렌이 현재 파악하고 있는 바로는 그에게 36명의 누이, 12명의 형제가 있어 판 할렌을 포함한 후손은 모두 49명인 셈이다. 그는 이들 외에도 익명을 원하는 몇명이 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낯선 사람들이지만 닮은 데가 아주 많다. 우리는 코와 눈, 치아가 비슷하다"면서 "오래전부터 서로를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직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판 할렌은 카르바트가 수년전 인터뷰에서 정자를 미국에서도 제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그가 제공한 정자가 본인 것인지, 제3자가 제공한 것인지가 불확실하고 그가 미국의 어느 지역을 방문했는지도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카르바트의 불임 클리닉은 2009년 행정과 진료기록 관리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당국으로부터 폐업 명령을 받았다. 단지 인터넷에 전화번호와 주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카르바트의 행각이 언론을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DNA검사를 원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카르바트가 미국에서도 정자를 제공했다는 점으로 미뤄 실제 그의 후손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번 사건은 그가 저지른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는 물론 DNA 검사와 프라이버시 보호를 둘러싼 법적 다툼, 실제 부모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자녀들의 권리가 얽혀 있어 대단히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판 할렌으로서는 분노를 터뜨릴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크게 분개하지는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AP통신 기자와 만난 그는 "물론 이 의사의 소행은 좋지 않고 내 부모, 내 형제들의 부모에게도 역시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의사가 없었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후손들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조이 호프드만(32)는 "우리는 이제야 알게 된 실상과 정보에 모두 만족하고 있고 따라서 잘 살아갈 수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어머니가 파트너, 즉 자신을 아들로 키운 남자의 정자를 들고 클리닉에 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보상을 요구하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DNA 검사 덕분에 판 할렌은 카르바트의 후손들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오래 산다는 점도 발견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깨닫고 있다.
그는 "난 두 아이를 낳았고 이복 형제들도 아이들을 두고 있다"면서 " 누이와 결혼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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