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듀크대의대 존 롤스 분자유전학·미생물학 부교수팀은 관련 논문을 저널 '이라이프(eLife)'에 최근 발표했다.
이 대학이 17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연구진은 초파리에 고지방 먹이를 준 뒤 장 내분비 세포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면밀히 관찰했다.
이 세포는 최소한 15종의 호르몬을 분비해 초파리의 장운동·포만감·소화·영양분 흡수·인슐린 민감성·에너지 축적 등에 관한 정보를 뇌와 다른 기관에 알린다. 최근에는 장의 내벽 상피에 드문드문 존재하는 내분비 세포가 초파리의 뇌와 신경계에 바로 연결돼 있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방이 많이 함유된 먹이를 주었더니 장과 뇌 등으로 보내는 신호가 몇 시간 동안 완전히 중단됐다.
연구진은 장 내분비 세포의 이런 기능 중단이, 고지방식을 섭취한 사람의 식욕이 더 강해지는 메커니즘과 연관됐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몸에 해로운 고지방식을 섭취할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인슐린 신호에 변화를 유발해 인슐린 내성과 2형 당뇨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메커니즘은, 제브라피시의 반응 과정을 더 세분해 관찰한 후속 실험에서 드러났다.
제브라피시가 처음 먹이를 감지하면, 장의 내분비 세포는 몇 초(秒) 안에 '칼슘 폭발(calcium burst)'을 촉발해 신호 전달 과정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최초 신호가 나은 뒤에는 '식후 시간(after-meal period)' 후반에 가서 지연효과가 나타났고, 신호 발송을 중단하는 내분비 세포의 '침묵( silencing)'은 지연 효과가 나타나는 동안 이어졌다.
침묵 상태에 들어간 내분비 세포는 형태가 변하면서, 새 단백질을 조립하는 소포체(세포질 망상 구조)의 스트레스를 겪었다.
이 과정을 거친 내분비 세포는 너무 많은 자극을 받아 한동안 탈진 상태에 빠지는 것 같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이런 내분비 세포는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같은 단백질을 합성하고 분비하는 데 특화됐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무균 상태에서 기른 제브라피시는 고지방 먹이를 줘도 내분비 세포의 신호 침묵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진은 장의 모든 미생물 종을 일일이 검사한 끝에 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라는 단열형 박테리아가 신호 침묵에 관여한다는 걸 발견했다.
장의 전체 미생물군에서 아시네토박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소 0.1%도 안 된다. 하지만 고지방 먹이를 받으면 단번에 100배로 늘어나 신호 침묵을 유발했다.
연구팀은 이런 '신호 침묵' 효과가 왜 생기는지, 이런 침묵이 제브라피시에 이로운지 해로운지 등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지방에 대한 과도한 신호를 막는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완벽한 침묵 상태에선 다른 신호도 보낼 수 없어, 여전히 앞뒤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롤스 교수는 "신호 침묵이 장 세포의 과도한 자극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하는, 이로운 적응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아시네토박터가 어떻게 신호 침묵을 일으키는지 밝히는 걸 다음 목표로 잡고 있다. 다른 박테리아 중에 이런 기능을 하는 게 또 있는지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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