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와 감기 바이러스(common-cold virus)는 모두, 왕관 모양의 스파이크 단백질 돌기를 가진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감염할 때 꼭 필요하다.
스파이크 단백질이 인체 세포와 결합해 '막(膜) 융합'을 일으켜야 바이러스 입자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침투로가 열린다.
이 발견은 인간 면역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화 유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금처럼 변이를 거듭하면 기존 백신의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프레드 허친슨 암 센터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8일(현지 시각) 저널 'PLOS 패소전스'(PLOS Pathogens)에 논문으로 실렸다.
사실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는 알려진 것만 수백 종에 달한다. 다행히 인간에게 감염해 질병을 일으키는 건 현재 대유행 중인 신종 코로나와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SARS-CoV),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MERS-CoV), 계절성 인간 코로나(HCoVs) 4종 등 모두 7종이다.
연구팀은 신종 코로나가 나타나기 오래전부터 인간들 사이에 널리 퍼져 가벼운 감기 증상을 일으켜 온 계절성 인간 코로나 4종 중 하나(229E)에 주목했다.
이 감기 바이러스 229E에 감염되면 스파이크 단백질에 대한 면역 반응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재감염이 방지되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연구팀은 예전의 229E와 상당히 진화가 이뤄진 최근의 229E를 구분해, 1980~90년대 감기 환자의 혈장 샘플을 스파이크 단백질에 각각 테스트했다. 예전 감기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오래 전에 분리된 혈장 공격에도 취약했다.
하지만 진화 과정을 거친 최근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은 오래 전에 분리한 혈장 공격을 회피하면서 최근의 혈장에만 취약함을 드러냈다.
이 결과는 진화한 229E가 스파이크 단백질의 축적된 돌연변이에 의존해, 오래 전에 분리한 혈장의 항체를 피한다는 걸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이는 또 신종 코로나를 비롯한 다른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도, 감기 바이러스 229E와 유사한 진화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한다.
앞으로 신종 코로나 변이가 계속 나오면 코로나 백신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인간에 전염하는 감기 코로나바이러스는 어떨 땐 수년, 어떨 땐 수십 년에 걸쳐 다클론성 혈장 항체를 회피할 수 있게 진화한다"라면서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가 중대한 항원 변이 진화를 거쳐 재감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항원이 변하는 진화가 이뤄지면 면역계는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해도 알아보지 못한다.
한편 프레드 허친슨 연구진은 지난 1월에도 감기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면역 회피 진화 흔적을 발견해 보고했다.
연구팀은 감기 코로나 4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229E와 OC43 2종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이런 진화 흔적이 집중된 걸 확인했다.
당시 저널 '이라이프'(eLife)에 실린 논문은, 감기에 자주 걸려도 면역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신종 코로나 변이의 면역 회피 가능성을 시사해 주목받았다.
이 논문의 수석저자인 프레드 허친슨의 트레버 베드퍼드 박사는 "신종 코로나 등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같은 방향으로 진화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라면서도 "만약 그렇다면 신종 코로나 백신을 새로운 변이 아종(亞種)에 맞춰 계속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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