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의 음성 명령을 알아듣고 수술도구를 건네거나, 내시경 시야를 유지하는 휴머노이드 수술보조 로봇이 첫 선을 보였다.
단순 조작형 수술도구를 넘어 사람처럼 협업하는 인공지능(AI) 조수가 수술실에 투입되면 필수의료 인력난과 지역의료 공백을 완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서울병원은 16일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 중인 ‘오케스트라(ORchestra)’ 연구 2차년도 성과 시연회를 진행했다.
이비인후과 정용기 교수(연구책임자)는 “총 5개년 계획 중 중간 점검 단계인 이번 시연에서 음성 명령 인식률과 동작 성공률 모두 목표치(95% 이상)를 상회하는 성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술현장에서 로봇이 수술 보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번 프로젝트 핵심 목표는 집도의를 보조해 도구 전달 및 내시경 유지, 조직 견인 등을 스스로 수행하는 지능형 수술 조수를 개발하는 데 있다.
기존 로봇수술이 콘솔 박스 안에서 의사가 직접 기구를 조종하는 원격 제어 방식이었다면, 이번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 간호사나 보조 인력처럼 수술대 옆에 서서 능동적으로 협업하는 형태다.
특히 기존 수술실 구조나 기구를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투입할 수 있어 병원측 초기 설비 구축 부담을 크게 덜어냈다.
연구팀은 수술실을 단순한 시술 공간이 아닌 \'서지컬 데이터 팩토리\'로 전환해 개발을 고도화하고 있다.
복강경 영상 역시 수술 장면과 도구, 동작을 하나로 묶은 ‘액션 트리플렛’ 데이터로 구축했다. 시제품은 집도의가 \"가위 줘\"라고 명령을 내리면 카메라로 도구 위치를 파악해 2초 이내 전달한다.
수술 도구 5종에 대한 집기 성공률 100%, 전달 성공률 98.7%를 기록했다.
연구팀은 향후 반응 시간을 1초 이내로 단축하면서 집도의 다음 동작과 필요 도구를 미리 예측, 준비하는 파운데이션 모델까지 연계할 계획이다.
2족 보행 대신 이동형 바퀴 채택…수술환경 맞춤 안전성 집중
로봇의 외형은 흔히 떠올리는 2족 보행 대신 바퀴가 달린 자율이동로봇(AMR) 기반 양팔형 모바일 플랫폼을 채택했다.
평평한 수술실 환경에서는 2족 보행 로봇보다 바퀴형 구조가 접지력과 안정성 면에서 훨씬 우수하다는 판단이다.
수술대 주변에서 정밀작업을 수행하려면 하중을 안정적으로 버텨야 하고,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돌발 상황에 대비한 다중 안전장치도 갖췄다.긴급정지 음성 명령, 전용 페달, 비상 버튼 등을 누르면 로봇관절 힘이 풀려 의료진이 손으로 쉽게 밀어낼 수 있다.
정상 작업 범위를 벗어나면 스스로 멈추며, 모호한 명령이 들어올 경우 임의로 동작하지 않고 의료진에게 재확인하는 안전 설계가 적용됐다.
연구팀은 향후 기술 개발과 더불어 로봇 오작동 사고 시 책임 소재 규명 등을 위한 법적·제도적 가이드라인 마련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삼성서울병원·레인보우 협업…2029년 임상시험 진입 목표
이번 사업은 삼성서울병원이 총괄 주관을 맡았으며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로봇 본체를, 에이딘로보틱스가 손 부위인 그리퍼를 담당했다.
AI 소프트웨어 개발은 성균관대와 서울대가 분담했고, 국립암센터와 전북대병원이 임상 데이터 수집과 실증에 참여했다.
현재 1단계에서 약 14억원 연구비로 핵심 기술 검증을 마쳤으며, 오는 11월 평가를 거쳐 2단계에 진입하면 약 120억 원을 추가로 확보해 5년간 총 137억원 규모로 연구가 확장된다.
연구팀은 향후 대동물 전임상시험과 전자파 안전성 시험, GMP 인증 등을 완료한 뒤 오는 2029년 첫 인체 대상 임상시험에 돌입할 방침이다. 위험도가
비교적 낮은 내시경 홀딩(스코피스트) 역할부터 시작해 복강경 시야 확보, 조직 견인 순으로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힌다는 구상이다.
수술실 24시간 공백 메운다…환자 부담 없이 효율성 극대화
의료 현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보조 로봇이 상용화될 경우 고질적인 수술실 인력난을 해소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사람이 수행하던 보조 역할을 대신하는 구조인 만큼 다빈치 등 기존 특수 수술로봇과 달리 환자에게 추가 수술비를 청구하는 방식은 고려하지 않고 있어 환자 부담 증가 우려도 덜었다.
의사 혼자 복수 로봇과 함께 집도하는 \'솔로 서저리(Solo-surgery)\' 환경이 갖춰지면, 야간 응급 수술이나 지방 중소병원의 수술 인력 공백을 상당 부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숙련된 보조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표준화된 고품질 보조 서비스를 구현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전망이다.
참여 기업들은 핵심 부품 국산화와 모듈 공용화를 통해 도입 단가를 낮추는 한편 임대 및 구독형 서비스 도입도 검토 중이다.
정용기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연구책임자)는 “수술실 한 곳을 24시간 대기 체계로 가동하려면 교대근무와 휴가 등을 고려해 최소 5명의 전담인력이 투입돼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로봇이 간호인력 1인분 몫을 온전히 해낼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된다면 병원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 충분한 경제성과 효용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