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근빈기자/기획 1]새해 벽두부터 비보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본인의 삶보다 그 누군가의 삶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던 두명의 의사는 참담하게 세상을 떠났다. 평소와 같았던 치열한 의료현장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고 동료의사와 의료인들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다. 타인의 고통과 마주하며 가혹하게도 인생을 그렇게 던져온 그들의 삶의 궤적은 많은 숙제를 남겼다. 환자안전이 강조되는 시기에 의사들의 안전이 외면받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기본적인 보호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의료현장의 딜레마로 각인됐도 결국 죽음을 통해서 한 걸음씩 변화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제2의 임세원, 윤한덕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장 안전해야 할 곳에서 외롭게 희생된 그들을 가슴 깊이 추모한다. [편집자주]
임세원, 환자 마음 치료하는 수호천사
“누군가는 타인에 대한 미움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를 용서하고 그의 행복을 빌어 주라고 말한다. 좋은 말씀이고 필요한 말씀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관대함과 관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일은 최소한 잘잘못을 따지는 부질없는 짓을 멈추고,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이것이 필요하다.”
강북삼성병원 故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쓴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2016년, 알키)’의 한 대목이다.
2012년 미국 연수를 앞두고 발병한 만성 허리디스크로 인해 본인이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고백하며 발간한 이 책은 환자의 고통에 대해 진솔한 얘기를 건네고 있다. 의사와의 거리감을 줄이고 환자와 보폭을 맞춰 걷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것이다.
그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며 환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했지만 역설적으로 본인의 환자로부터 피습당했다.
#. 2018년 12월31일 오후 5시40분경 ‘양극성 정서장애’를 앓고 있던 외래 환자 박씨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상담을 하던 임세원 교수에게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고 도망가는 임교수를 뒤쫓아 가슴 부근을 수차례 찔렀다. 임 교수는 응급실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이날 오후 7시 30분경 사망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던 그는 사망했지만 숭고한 정신은 유가족들에게 이어졌다. 오히려 “우리 함께 살아보자”는 품격있는 위로를 통해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유족은 커다란 슬픔 앞에서도 담대하게 “고인은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 없이, 누구나 쉽게, 정신적 치료와 사회적 지원을 받기를 원했다. 고인의 죽음은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정신건강 의료진과 여러 의료진의 안전 확보 이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의금 1억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 헌신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다. 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성금을 추가로 조성해 임세원상 제정을 추진 중이다.
타인에게 도움 주는 삶 실천
그는 20여 년간 우울증과 자살예방을 위해 매진했다. 우울증 및 불안장애와 관련된 학술논문 100여 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 큰 업적 중 하나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한 것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군인들에게 교육할 때 무보수 재능기부로 임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에는 한국자살예방 협회가 선정한 ‘생명사랑대상’도 받았다.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했던 당시 그는 “나는 손재주도 없고 건강도 좋지 못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살아온 삶은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된다.
그의 책 속에서도 “내가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매일 만나는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고, 외래 진료가 시작되면 그야말로 전력투구를 한다”고 고백했다.
마지막 순간에서도 그는 도움을 줬다. 임 교수는 사건 당시 옆 진료실과 연결된 문을 열어 피한 뒤, 진료실에서 3층 복도로 통하는 문으로 나와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진료실 문 앞에 있던 간호사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며 다른 의료진의 안전을 계속 확인했다.
병원 복도의 폐쇄회로(CCTV) 화면에는 반대편으로 도망치던 임 교수가 돌아서서 간호사가 무사히 피했는지를 확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끝까지 타인을 위해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일관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매일 매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수 있다는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온 그의 인생은 47살에 머물렀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숭고한 정신은 후세에도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윤한덕, 대한민국 응급의료 영웅
“그는 20년간 의료계 뿐 아니라 이 사회의 가장 어렵고 가늠 하기조차 불가능한 중과부적의 현실에 정면으로 부딪쳐 왔다. 응급의료 현실이 견딜 수 없이 절망적임을 인지하면서도, 개선의 노력조차 무의미하다는 버려진 섹터를 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