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산부인과 의사들이 수술을 거부하고 나서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 수술(낙태수술)을 한 의사에게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내리겠다고 개정안을 발표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수술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데일리메디는 의사의 소명인 수술을 거부하고 고시에 반발하며 정부와 대척할 수밖에 없었던 산부인과 의사들 입장을 살펴보고 향후 이 사건이 어떻게 풀릴지 조망해봤다.[편집자주]
금난 8월 복지부는 낙태수술 시행 의사에 대한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포함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안을 발표 했다.
이번 고시에는 ▲진료 중 성범죄를 범한 경우 자격정지 12개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마약 또는 향정신의약품을 투약 또는 제공한 경우 자격정지 3개월 ▲약사법에 따른 허가나 신고를 받지 않은 의약품을 사용 또는 변질·오염·손상됐거나 유효기간 또는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 자격정지 3개월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 등이 담겼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 같은 개정안에 대해 분노했다.
현행 형법 270조는 ‘의사·한의사·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을 받아 낙태한 때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에서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 ▲혈족·인척간 임신 ▲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낙태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시대에 맞지 않는 현행 모자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산부인과 의사들의 주장이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직선제)산의회)는 이번 복지부의 개정안을 강하게 비판하며 낙태수술 거부로 맞불을 놨다.
(직선제)산의회는 “OECD 국가 중 23개국에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고, 형법상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일본조차도 사회·경제적 정당화 사유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과 그들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피할 수 없는 양심적 의료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산부인과 의사들을 범죄 집단인 양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고시가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추진된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수많은 임신중절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 의사 처벌 강화만을 목적으로 하는 고시라는 것이다.
(직선제)산의회는 “우리는 임신중절수술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죄 처벌에 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또 헌법재판소에서 낙태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입법미비 해결에 노력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제270조의 위헌 여부를 두고 헌법소원을 진행 중이다. 낙태죄로 기소됐던 한 산부인과 의사가 2017년 2월 해당 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헌재의 결정 시점은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았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개정안에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는 한 발 물러섰다.
2018년 8월 28일 열렸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낙태를 비롯한 비도덕적 진료행위 행정처분에 대해 질의하자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의사들에 대한 처분을 유예하겠다고 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답한 것이다.
남인순 의원은 “복지부가 이번 고시를 의견 수렴 없이 기습적 으로 발표한 이유는 무엇이냐”며 “기습적으로 강행했다는 지적들이 있는 만큼 현장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해당 의사들에 대한 처분을 유예하겠다”고 답했다.
박능후 장관은 “낙태는 당초 자격정지 12개월을 검토하다가 기존대로 1개월로 했다”며 “법제처 심사를 마치고 통지가 와서 공표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헌재에서 위헌 법률 심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을 강행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며 “이번에 개정된 공포는 법제처 통보에 따른 것이다. 처분은 잠시 보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낙태죄로 의사를 신고하더라도 수사를 거쳐 사법부의 판단이 나와야 행정처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료계vs정부,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
헌재는 지난 5월 낙태죄에 대한 변론을 진행했으나 이후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당초 8월에는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