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숙경 기자] 연구실 한 쪽 벽에 붙어 있는 표가 눈에 띄었다. 연차별로 구분졌지만 사진이 부착된 국내 유수 A대학병원 산부인과의 레지던트 명단이었다.
중도 하차한 1명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각 연차별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만 총 레지던트 중 80%는 절대다수가 여성이었다.
십 수 년 전 전공의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아 비인기과 서러움을 감내해야 했던 산부인과가 최근 들어 완만한 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어 보인다.
서울 소재 A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의과대학에서 배출되는 여학생 비율이 오래 전부터 높아졌다. 연장 선상에서 임상강사 등 산부인과에 소속된 여의사들 역시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최근 산부인과 전공의 모집결과를 살펴보면 2010년 64.2%에서 2011년 65.6%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12년 70.0%, 2013년 73.6%, 2014년 87.1% 등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2015년 전공의 모집에서는 정원을 초과한 105.3%를 기록, 반등 분위기를 예고했다.
하지만 이내 2018년 전공의 모집에서 산부인과 총 인원 114명 중 99명이 지원해 86.8%의 지원율을 기록하면서 또 다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이 과장은 "일각에서는 산부인과 레지던트 수급률이 예년과 달리 회생 조짐을 보이면서 과거 암울했던 상황은 벗어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이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소위 빅5병원 중 일부에서는 산부인과가 전공의 인력 수급에 있어 심각한 차질을 빚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공백이 발생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겉만 보고 현 상황을 절대적인 잣대로 진단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B대학병원에서 분만을 맡고 있는 산부인과 교수도 "상당 부분 변했지만 여의사가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진료과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한 측면에서 전공의 지원율 향상 의미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산부인과는 세부적으로 부인과와 산과로 나뉜다. 특성상 여의사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다른 외과계열에 비해 진출 장벽이 비교적 높지 않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그는 "다만 부인암 수술을 비롯해 밤샘 당직, 의료사고 위험성 등을 감안할 때 만약 여의사들의 경력 단절로 이어진다면 과 전체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힘들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산부인과 인기 높아지고 있지만 실상은 여의사한테 인기 높아져?"
그러면서 뼈 있는 말을 던졌다. "혹자는 산부인과 인기가 요즘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의사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사실 고령 임신과 난임이 늘어나면서 고위험 산모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하지만 일부 여의사들이 고위험 임산부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밤을 새가면서 진료현장에서 매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과에 비해 대학병원 스탭 자리가 종종 생겨나는데도 선뜻 나서는 이들이 없다"고 귀뜸했다.
여의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서울 C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실력있는 여의사들이 충실히 역할을 수행해주면서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주지의 사실"이라고 밝혔다.
다만 "역시 우려되는 일은 일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산부인과 남자 의사들이 은퇴하는 시기가 도래하면 과연 위험도 높고 험난한 분만을 포함해 고난이도 암수술이 완벽히 소화될지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는 현재 대한민국의 왜곡된 의료수가 탓도 크다. 분만수가 인상 등 단기적인 처방으로는 절대 약발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는 "구조적 시스템 악화로 직결됐고 상당 수 대학병원이 분만장을 운영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라며 "공간, 인력, 장비 등에 비용을 투입할 여력이 없는 곳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