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다영기자]인터넷 속 익명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소통하게 됐다. 전례 없는 소통 방식은 사회 각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전에 없던 사건, 사고들이 발생 하면서 인터넷 공간 속에서 새로운 윤리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윤리 논란에 휩싸인 의료인들이 있었다. 올해 초 한 정신과의사는 SNS에서 배우 유아인씨를 ‘경조증’이라고 판단해 비판을 받았으며 故신해철씨 집도의는 과거 수술이력과 관련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한 혐의가 항소심에서 의료정보 노출로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두 사건을 통해 의사들이 인터넷 상에서 지켜야 할 윤리 등을 짚어봤다.
배우 유아인씨 경조증 판단 의사, 학회 제명
배우 유아인씨가 ‘경조증’이 의심된다는 글을 본인의 SNS에 게재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소속학회 제명 등 강도 높은 처분이 내려졌다.
사건은 작년 11월 배우 유아인씨와 한 네티즌의 설전에서 시작됐다.
한 네티즌이 SNS에서 유아인씨를 “막 냉장고 열다가도 채소칸에 애호박 하나 덜렁 들어있으면 가만히 들여보다가도 나한테 혼자라는 건 뭘까? 하고 코 찡긋할 것 같음”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 유아인씨가 “애호박으로 맞아봤냐”는 댓글을 달며 불편함을 표출했다.
네티즌과 유아인씨의 언쟁을 지켜보던 김현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유아인씨에 ‘급성 경조증’ 가능성을 지적했다.
김 전문의는 ‘0아0’으로 유아인씨를 지칭하며 “급성 경조증 유발 가능”, “이론상 내년 2월이 가장 위험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후 유아인씨가 SNS에 올린 글만 보고 진단을 하고 인터넷에 공개, 김 전문의에 불똥이 튀었다. 정신과 진료는 환자에 대한 충분한 면담과 관찰, 신중한 진단이 특히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진료과의 특성을 무시한 채 유아인씨가 작성한 글만 보고 ‘급성 경조증’을 진단한 김 전문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잇따랐고 실시간으로 비판이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진료 없이 진단을 내리는 의사에게 전문의 자격은 과분하다", "전문의 자격을 박탈시켜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 일부만 보고도 병이라고 진단을 내릴 것을 생각하니 무섭다" 등의 반응을 보였고 해당 사건은 인터넷 상에서 일파만파 확산됐다.
김 전문의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그를 비판하며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정신과 진료의 특성상 개인을 진료실에서 면밀히 관찰하고 충분히 면담하지 않고서는 진단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 윤리규정에 따라 조치해달라” 라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공식 요구했다.
파장이 커지자 김 전문의는 본인의 SNS를 통해 공개 사과했다. 이전에 본인이 작성했던 글들을 삭제하고 SNS 계정에 “취지 여하를 막론하고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너무도 송구하며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청문심사위원회를 꾸려 김 전문의를 조사한 후 금년 3월 상반기 정기대의원회를 열고 김 전문의에 대해 제명 조치를 내렸다.
제명은 학회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 처분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고위 관계자는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인들은 전문가로서 신중히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라며 “법적으로 규정된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하더라도 의료인으로서, 전문가로서 지켜야 할 선은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다른 고위 관계자는 이 사건과 관련, “김 전문의가 SNS에 배우 유아인씨 관련 글을 올린 것이 문제는 됐지만 학회가 제명된 것에는 이후 성추문 등 여러 배경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의료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넘었다고 판단돼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신해철 집도의, 징역 1년 선고
故 신해철씨 위장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 강모 씨에게 대법원은 항소심과 동일하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최종 확정했다. 강씨는 금고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1심보다 더 무거운 형을 받게 됐다.
실형이 늘어난 데에는 ‘업무상 비밀누설 및 의료법 위한 혐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강씨가 인터넷 상에 故 신해철씨 의료정보를 공개한 것을 위법행위라고 판단했다.
언론에 여러 차례 공개됐던 이 사건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씨는 2014년 10월 17일 신씨에게 복강경을 이용한 위장관 유착박리술과 위 축소술을 시행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신씨는 수술 후 고열과 복부 통증, 심막기종 등 복막염 증세를 보여 같은 달 22일 타 병원에 입원했으나 5일 뒤인 27일 사망했다.
대법원 재판부가 위법행위라고 인정한 사건은 이후 발생했다.
강씨가 故신해철씨 사망 후 같은 해 12월 인터넷에 ‘의료계 해명자료’라는 제목으로 신씨의 과거 수술 이력 및 관련 사진 들을 공개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사망한 환자의 의료기록 유출은 법리상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의료기록 유출은 위법행위지만, 사망한 환자이기 때문에 강씨의 행위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는 1심과 달리 인터넷에 환자의 의료정보 노출을 문제 삼았다.
법원은 “환자가 사망했더라도 그의 의료기록을 누설한 것은 의료법상 정보누설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고 판단, 인터넷상 환자 개인의 의료정보 노출을 비윤리적인 행위로 봤다.
재판부는 “강씨는 수술 후 피해자가 계속 통증을 호소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라며 “그럼에도 유족에게 사과하기에 앞서 유족들 동의도 받지 않고 개인 의료정보를 인터넷 사이트에 노출하는 등 추가 범행까지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의사가 인터넷 사이트에 환자 정보를 노출하는 것은 윤리적 선을 넘은 ‘범죄’로 규정한 것이다.
또한 “아직도 유족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으며 피고인도 스스로 유족들에게 피해회복 조치를 한 바도 없다”라며 “다만 신씨가 강씨의 입원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진료시간에 병원에 오지 않아 적정한 진료나 진단이 다소 지연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판결에 대해 공간을 막론하고 제3자에게 의료정보를 노출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정보 노출은 의료인으로서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
대한의사협회 한 관계자는 “환자 의료정보는 개인이 아닌 배우자, 부모, 형제에 노출하더라도 위법행위”라며 “인터넷 공간은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한 범죄행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의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학술적으로 그 사례를 논의하는 경우에는 의료정보 노출이 아니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환자 개인정보와 의료정보를 노출시키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위법행위”라며 “의료인들은 인터넷 상에서도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환자 개인정보를 보호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ttps://dailymedi.com/dmedi/img/nimg/logo.gif)
박다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