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님비)와 환대(핌피) 아이러니 '의료시설'
최종수정 2018.05.16 05:44 기사입력 2018.05.16 05:44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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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사회학에 님비현상이란 말이 있다.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의 줄임말로, 글자 그대로 내 뒷마당은 안 돼!’라는 뜻이다.
 
즉, 장애인 시설이나 쓰레기 처리장, 화장장, 교도소와 같이 거부감이 들거나 땅값이 떨어질 우려가 있는 시설이 자신들의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사회현상이다.
 
공공의 이익은 인정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허용할 수 없다는 식의 지역 이기주의를 지적할 때 왕왕 등장한다.
 
역으로 핌피현상도 존재한다.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의 이니셜을 줄여 쓴 말로, ‘제발 우리집 앞마당에 와주세요!’ 쯤으로 해석이 가능하겠다.
 
수익성 있는 사업을 자신들의 지방에 유치하려는 현상이다. 님비와 정반대의 개념이지만 이 역시도 지역 이기주의임은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는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이 현상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속철도 노선이나 대기업 공장 유치를 둘러싼 갈등 모두 핌피현상이다.
 
이 두 현상 모두 극명한 호불호(好不好)에 근거하지만 유독 동일 분야임에도 님비와 핌피를 동시에 품고 있는 영역이 바로 의료.
 
최근 경기도 수원의 통합정신건강센터설립을 둘러싼 갈등은 여지없는 님비현상이다. 주민들은 초등학교 인근에 정신질환자 치료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차라리 초등학교를 폐교하라!” “아이들을 성도착증 환자들로부터 지켜야 한다!” 주민들이 내건 구호에는 완강한 거부감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이에 대해 의학자들은 유감을 표했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의 인식 개선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들이 허사였음을 개탄하는 아쉬움의 발로였다.
 
의료계의 님비는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병원 장례식장 설립을 놓고도 주민들과 갈등을 빚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국회에서는 아예 장례시장을 폐기물 처리장, 가축시장, 화장장, 납골시설, 경마장, 경륜장, 유훙시설과 함께 위해시설로 지정하고 학교 근처 설립을 금지토록 하는 법안이 나오기도 했다.
 
이 법안의 발의 배경에는 국회의원의 해당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이 있었다. 주민의 님비현상에 국회의원이 힘을 보탠 형국이었다.
 
또한 국내 최대 국립정신병원인 국립서울병원의 현대화 작업이 주민들의 반발로 난항을 겪어야 했던 기억은 아직 또렷하다. 그들에게 정신병원은 곧 혐오시설이었다.
 
하지만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등장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선거철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의과대학 또는 대학병원 유치 공약이다.
 
의과대학의 경우 그 상징성과 가치적 측면에서 지역주민은 물론 지자체도 유치를 희망한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인수를 놓고 펼쳐졌던 경쟁은 의심의 여지없는 핌피현상이었다.
 
대학병원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인은 물론 각 지자체까지 뛰어든 유명 대학병원 유치전은 눈물겨울 정도다. 지자체들의 병원부지 무상 제공은 식상한 조건이 돼 버린지 오래다.
 
실제 여의도 면적의 3배가 넘는 2만평에 가까운 땅이 의료시설 부지로 지정됐음에도 병원이 입주하지 않아 10년 이상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핌피현상이 초래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한 달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에도 주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의대와 병원 유치 공약이 난무하고 있는 모습이다.
 
의료는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행위다. 귀천은 천부당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의료는 홀대와 환대가 교차하는 아이러니 속에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지역 이기주의와 무관하게 진료권을 보장받는 성숙된 사회문화가 절실하다. 님비도 핌피도 생명보다 귀할 수 없다.
박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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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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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2000
  • wannabe 05.16 17:24
    성숙된 사회문화...정말 절실합니다. 필요하다, 하지만 내 집앞과 우리동네는 안된다는건 명확한 님비현상이지요. 위험하지 않다는 말을 수백 수천번 하고 근거를 들이대도 귀닫고 들으려하지 않는, 지역이기주의. 편견과 왜곡...언제쯤 성숙한 문화가 생겨날까요..ㅠㅠ
  • smileee 05.16 17:41
    기사의 글처럼, 그동안 알게 모르게 홀대를 받아왔을 분들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설사 환대는 아닐지언정, 올바르지 않은 무분별한 정보로 그 분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줘서는 안되는 거 아닐까요? 편견과 인식개선을 위한 더 많은 노력과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 민들레홀씨되어 05.16 17:46
    기자님의 올바른 정신을 응원합니다.!!~~~ 한치 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이기주의가 아이들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기원해보며, 편견과 성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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