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기자] “그 어느때보다 길고 어려운 협상이었다.” 2021년도 수가협상에 참여한 공급자와 가입자 단체가 남긴 감상의 공통점이다. 올해 시행된 수가협상은 코로나19 리스크와 맞물려 어느 때보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고 결국 의원과 병원, 치과 결렬이라는 유형별 수가협상 이후 첫 사태를 맞게 됐다.
올해 수가협상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의료계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부담을 이유로 '통상적 협상과는 다른' 차원의 인상률을 주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공단 측도 '국민경제 회복'을 들며 건강보험료 상승을 경계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5월 초 첫 상견례 자리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는 내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통상적 수가협상 절차와 더불어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 측면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회장도 “수가협상을 위한 자료 검토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수가 협상을 통상적 협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에 국민건강보험단은 ‘국민경제 회복’으로 맞대응했다.
김용익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19 대응이 생활방역 단계로 접어든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함께 국민경제 회복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라며 “의료계의 어려움도 크고 보험료를 내야 하는 국민의 부담도 크기 때문에 쌍방 간 입장을 고려하며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수가협상 결과 예년보다 인상률이 높을 경우 공단은 보험료 상승에 따른 부담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과 매해 증가하는 적자분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공단의 첫 재정소위 이후로도 지속됐다.
회의 후 진행된 브리핑에서 최병호 재정운영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을 수가협상에 계량적으로 반영할 수는 없다"며 "(코로나19를)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으로 수가를 올려달라는 것이 의료계 요구인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가입자의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공단 또한 요양급여 선지급 등으로 재정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그런 것까지 따지는 것은 재정위원회 권한이 아니다. 보험료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아예 코로나19를 배제하는 게 낫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깨졌던 밴딩 ‘1조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도 커지는 순간이었다.
최근 5년간의 밴딩 추이를 보면 ▲2015년 6685억원(2.22%) ▲2016년 6503억원(1.99%) ▲2017년 8143억원(2.37%) ▲2018년 8234억원(2.28%) ▲2019년 9758억(2.37%) ▲2020년 1조478억원(2.29%) 등 꾸준히 증가 추세였다.
이 가운데 전년 대비 유일하게 밴딩 폭이 축소됐던 때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진행됐던 2016년도 수가협상이다.
의료계에서 메르스로 인한 경영난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밴딩이 전년 6685억원에서 6503억원으로 축소됐을 뿐만 아니라 대한병원협회의 경우 건정심에서 최종 수가인상률이 1.4%에 그치면서 수가협상단장을 비롯해 임원진이 사의를 표명하는 사태까지 이르기도 했다.
의료계는 코로나19에 따른 보상책을 기대하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 예년 수준은 커녕 그에도 못 미치는 밴딩폭이 설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공단 수가협상단 측도 협상 막바지까지 코로나19와 수가협상을 연결짓는 것에 난처함을 드러냈다.
1차 협상 후 대한약사회 윤중식 보험이사는 “공단 측으로부터 ‘올해 수가는 지난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정한다’는 답을 들었다”며 “요양기관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으나 코로나19 사태를 수가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자료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곧 올해 상황을 수치화해 수가 인상률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가능성을 전면 차단한 것은 아니지만 공급자 단체가 한목소리로 코로나19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다소 선을 긋는 태도였다.
“코로나19를 고려한다, 안 한다를 얘기하는게 큰 의미가 없다"고 피력했던 의협을 비롯한 공급자 측 수가협상단과의 동상이몽이 예측됐다.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진 2차 재정소위 후도 비슷했다.
2차 재정소위 후 최병호 위원장은 “우리 기대와 의료계 기대가 다를 수 있겠지만, 당초 예상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의료계 어려움을 가입자 측에서 상당히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