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주 52시간 근무···우왕좌왕 의약계
최종수정 2018.06.27 12:15 기사입력 2018.06.27 12:15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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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디 양보혜·김진수 기자] 오는 7월 1일부터 공공기관과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은 주당 최장 근무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된다. 이 같은 제도 변화에 따라 대학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 제약업계 등 다양한 보건의료 분야에서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근로기준법상 보건업은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해당 돼 노사 합의에 따라 연장근로시간을 넘겨서도 일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둬 의료기관들에게 숨 쉴 틈이 생겼다. 그러나 제약업계의 경우 연구개발, 영업, 생산 등 각 직군별로 상황이 달라 대안 마련이 쉽지 않은 모습이다. 다행히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정부가 처벌 및 단속에 관해 6개월 유예기간을 뒀다. 곧 시행될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의료계와 제약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봤다.[편집자주]
 

올해 3월 국회는 ‘주 52시간 근로’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오는 7월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본격 적용된다.

개정안 시행이 임박하면서 의료기관 및 제약산업 현장에서 크고 작은 변화의 모습들이 포착되고 있다.
 

몇몇 대학병원들은 주 52시간 근무 실시에 따라 인력 공백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규인력을 채용하고 부족한 인원 확보 등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강원도 소재 A대학병원은 이달 초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의료기사, 사무직, 시설기술직, 전산직 등 35명에 대한 인력 채용을 실시했다.
 

이는 병원 직원들이 법적 규정인 주 52시간 근무를 초과해 근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병원의 대응으로 새롭게 채용될 35명은 모두 정규직으로 발령될 예정이다.
 

충청도 소재 B대학병원 역시 주 52시간 근무제도에 맞춰 방사선사와 임상병리사 등 의료기술직을 비롯해 간호사, 행정직, 전산직 등 전 분야에서 새롭게 직원 채용에 나섰다.
 

그러나 대부분의 병원들은 새로운 인력 충원 등 큰 변화를 주기보다 직원들과의 합의를 통해 초과 근로시간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보건의료산업은 24시간 지속적 운영이 불가피한 산업으로 규정돼 노·사 간 합의에 따라 주당 12시간 이상 연장 근로가 가능한 특례 업종에 해당하는데 대부분의 병원이 이를 근거로 별도의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서울 소재 C대학병원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해서 별도의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거나 대응방안 마련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D대학병원 관계자 역시 “노·사 협의를 통해 초과 근무시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예정이고 인력 충원 등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제약업계 "R&D, 영업 및 생산직 비상"

 

제약업계도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한 대책 마련에 부심(腐心)하고 있다. 그러나 모호한 가이드라인과 직무별로 처한 상황이 달라 현장에서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개정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300인 이상 제약사는 총 73곳으로 집계된다. 국내 제약사는 약 600곳(완제 353곳·원료246곳)으로 12% 정도가 대상 기업이다.

제약업계는 새 제도 도입을 앞두고 현황 파악 및 대책을 논의한 결과 직군별로 처한 상황이 모두 달랐다. 예상치 못했던 연구개발(R&D)직이 대안을 찾기 가장 어려웠고, 영업직과 생산직도 합의를 이루기 힘들었다는 전언이다.

R&D 파트는 연구원의 전문성과 축적된 경험이 R&D 성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대체인력 활용이 쉽지 않다. 이와 함께 과제가 프로젝트별로 운영되며, 박사급 이상 학력을 요구해 인원 충원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국내 제약사들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연구직 충원에 적극 나서왔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효과적인 인력 운영 방안에 대해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최근 2~3년간 상위 제약사를 중심으로 연구직 충원이 활발하게 이뤄져왔는데 개정안 시행으로 더 뽑아야 하는지 고민"이라며 "연구직의 경우 생산성과 직결돼 교대나 대체근무 방식이 어렵다"고 말했다.
 

중견제약사 연구소장도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제한된 기간 동안 야근, 주말근무도 할 수 있는데 앞으론 무조건 주 52시간을 준수해야 하니 조정 방안을 여러 차례 논의해도 뾰족한 해법이 나오질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연구직의 경우 박사 출신 이상으로 채용하기에 인건비 부담이 상당히 큰 편"이라며 "법이 엄격하게 적용되면 국내 제약산업이 신약 개발 경쟁에서 '속도전'에 밀릴 수도 있지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영업 및 마케팅직과 생산직도 근로시간 조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서 명시한 근로의 범위가 모호하고, '근무시간'이란 개념도 직종마다 달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영업·마케팅 파트는 외근이 많고 학회나 컨벤션 등이 야간 혹은 주말에 열리는 경우가 많다. 영업활동 근무시간을 어떻게 측정할지, 시간 외 근무를 어떻게 근로시간에 산정할지 등을 두고 고민이 많은 모습이다.

또 다른 대형제약사 관계자는 "영업직의 경우 사무실에서 내근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업무가 대부분 병원과 약국의 영업시간이 끝나는 시점에 이뤄지다 보니 어디까지 근무시간으로 봐야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중소 제약사 관계자도 "의료계 학술대회나 행사 대부분이 주말에 열리고, 영업사원이 개인적으로 접대 활동을 하는 일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업무로 보면 주중에 두 번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생산직 역시 52시간 도입 시 어려움이 예상되는 분야다. 특히 일부 제약사에선 '법정 근로시간은 준수하되, 임금 하락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조의 강경한 태도 탓에 협상에 난항을 겪은 일도 있다고 한다.
 

실제 최근 민주노총에 가입한 S제약사는 생산직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 노조 관계자 및 임원이 참석해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고 전해졌다.
 

회사 측은 "노조 관계자와 업무시간 조정이나 임금에 관해 논의한 바 있다"며 "하지만 노조에 가입된 생산직 근로자 인원이 절반에 불과해 대표성을 띤 단체라고 볼 수 없어 그들의 요구를 다 수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병원 노사협의 갈등···제약사들 유연근무 모색
 

보건의료산업이 근로기준법상 특례업종이라는 점을 근거로 근로자 300명 이상의 의료기관에서는 채용보다는 기존의 인력을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며 이를 두고 마찰음도 들려오고 있다.
 

보건의료산업은 24시간 지속적 운영이 불가피한 산업으로 규정돼 노·사 간 합의에 따라 주당 12시간 이상 연장 근로가 가능한 특례 업종에 해당하는데 대부분의 병원이 이를 근거로 별도의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이렇듯 병원에서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으로도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 않아 노조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특례업종 폐기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산업을 근로기준법상 특례업종으로 규정할 이유가 없다. 진료 공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환자 안전 위협이 걱정되는 것이라면 충분한 인력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부재로 혼란을 느낀 제약업계에서는 ‘유연근무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 제도는 개별 직원이나 근로자 대표 등과 계약을 통해 시간선택제, 제택근무제 등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유한양행, GC녹십자, 종근당, 동아ST, 대웅제약, 한미약품, JW중외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등 내로라할 국내 제약사들이 효과적인 대안으로 고려, 선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열린 설명회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도 유연근무제 도입을 권장했다"며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직원이 근무시간과 형태 등을 조정, 결정할 수 있어 그나마 적용 가능한 대안으로 본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업계는 특례업종 추가 지정이나 업계 특성을 고려한 유연근무제 적용 등의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신약 연구 및 의약품 개발의 특성상 일정 차질의 우려가 큰 경우 집중근무를 위해 한시적으로 법정 근로시간 제외를 적용하거나, 유연근무제 산정단위 확대 등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양보혜·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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