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원시에서 25년간 산모들의 건강을 책임져온 유명 여성병원이 문을 닫는다. 갑작스런 폐업 소식에 병원을 이용하던 지역 산모들도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24일 본지 취재결과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위치한 예인여성병원이 이달부로 폐업한다. 병원 관계자는 "내달부터 모든 진료를 종료하고 병원 운영을 멈춘다"고 말했다.
1999년 개원한 예인여성병원은 지역 최초로 세워진 여성병원으로 '여성의 건강, 아름다움을 지키는 병원'이라는 슬로건 임신분만센터, 여성질환센터, 소아청소년센터 등을 운영해 왔다.
예인여성병원은 오랜기간 산모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역 대표 산부인과로 자리매김했지만 열악해지는 진료환경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예인여성병원은 새로운 인수자에게 매각까지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
새 인수자는 병원 내외시설을 정비 후 오는 8월 일반 건강검진과 암 환자 보존적 치료를 중점으로 하는 암 재활병원으로 전환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저출생 여파와 의사 수급 문제 등을 이유로 분만 진료를 포기하는 것을 넘어 아예 휴·폐업을 선택하는 병원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유명 산부인과인 곽여성병원(곽생로산부인과)도 이달부로 폐업을 결정했다.
곽여성병원은 1981년 개원 이래 43년간 산모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병원이다. 2018년 단과병원 중 전국 분만 1위 병원으로 선정되면서 전국에서 산모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병원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저출산 여파로 분만 진료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폐업을 피하지 못했다.
광주 북구 대형 산부인과인 문화여성병원도 지난해 9월 출산율 감소에 따른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다.
이들 병원은 모두 정형외과 등 타 진료과목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9월 폐업한 울산시 남구 프라우메디병원은 정비를 거친 후 이달 정형외과로 탈바꿈했다. 병원은 '더 프라우병원'이라는 새 이름으로 정형외과, 신경외과, 수부외과 내과, 영상의학과를 주축으로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프라우메디병원은 1991년 개원한 이 병원은 ‘내 아이의 아이까지’라는 슬로건을 걸고 지역 출산과 산후조리, 소아청소년과 진료 등 출산과 보육의 ‘산실’로 30년 넘게 역할을 해왔다.
금년 2월 돌연 분만진료를 중단한 정관일신기독병원은 현재 척추·관절질환 진료를 강화하며 정형외과로 변모했다. 같은 재단 산하에 있는 화명일신기독병원도 오는 6월부터 분만진료를 중단하고 방향성을 수립한다.
산부인과 위기는 갈수록 심화하는 저출생 문제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에서 2023년 0.72명까지 떨어졌다. 올해 출산율은 0.68명까지 주저앉을 것이란 전망이다.
저출생 뿐 아니라 위험 부담이 큰 분만을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실제 보건복지부 '모자의료 지원사업의 전문 인력 운영 및 제도적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젊은 산부인과 의사 110명(4년차 전공의 82명·전임의 28명) 중 47%는 분만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분만을 담당하지 않는 이유로 79%는 '분만 관련 의료사고 발생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지원 차원에서 2600억원을 투입해 분만 수가 인상 등 대책안을 내놨지만 현장 분위기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김재유 회장은 "필수의료인 산부인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현실을 반영한 수가 인상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