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마취사고 절반은 예방이 가능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이 현장에 있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들이었다."
"그러나 적자를 이유로 일선 병원들이 전문의 채용을 기피하고, 마취 시행자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구조 등으로 예견된 마취사고가 악순환처럼 반복되는 상황이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김재환 이사장(고대안산병원)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에 대한 '수가가산'과 ‘마취 실명제’ 시행 필요성을 주장했다.
현재 국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수는 절대 부족하지 않지만 정작 마취가 필요한 수술장에서는 전문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의료법 상 수술에 필요한 마취는 전문의가 아닌 집도의도 할 수 있고, 마취료 원가 보전율이 낮아 의료기관들이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전문의를 고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보고된 ‘원가계산시스템 적정성 검토 및 활용도 제고방안 2단계’ 연구에 따르면 마취료 원가 보전율은 72.7%에 불과했다.
김재환 이사장은 “집계 불가능한 병원의 인적·물적 투입을 고려하면 실제 마취 수가는 원가의 50%에도 못 미친다”며 “특히 포괄수가제에 마취료가 없어 병원들의 마취 분야 인력·자원 투입은 계속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한 인력 공백이 마취사고를 낳고 있다는 주장이다. 근래 발생한 2018년 부산 대리수술에 의한 뇌사사건, 지난해 간호사 대리마취로 인한 산모 사망사건이 그 예다.
지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학회에 의뢰된 마취 관련 의료사고 중 92%의 환자에서 사망·영구적 손상이 발생했다.
그는 “환자안전과 직결되는 필수적인 마취 분야까지 인력을 줄이려 한다”며 “이 중 43%는 전문의에 의한 표준적인 마취 관리만 했어도 예방할 수 있었다”며 탄식했다.
이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마취를 전담으로 시행하는 경우 마취 수가의 차등급여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턱없이 낮은 원가보전→일선 병원들 마취 전문의 고용 기피"
"대리마취 등 사고 빈발···표준관리만 했어도 예방 가능하고 '마취실명제' 도입 필요"
"포괄수가제서 마취료 분리, 전문의 가산해야"
김재환 이사장은 환자안전을 위해 ‘마취실명제’ 도입을 제안했다. 의무기록 작성 및 보험 청구 시 마취를 시행한 의사의 면허번호를 기입하자는 것이다.
'마취실명제'는 완전히 낯선 개념은 아니다. 이미 의료기관들은 지난 2016년 시행된 ‘설명의무법’에 따라 마취 전 환자에게 서면 동의를 받고 마취 의사의 성명을 기록해야 한다.
단, 정작 마취를 시행하는 의사 자격을 환자에 알리지 않아도 되는 허점이 있는 만큼 실질적인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이사장은 “설명의무법을 별도로 만든 것은 마취 안전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라며 “중소병원의 경우 두루뭉술하게 이름을 잘 밝히지 않는 등 위법은 아니지만 교묘한 운영이 이어지는 실태”라고 지적했다.
실제 집도의가 정확한 설명 없이 수술과 동시에 마취를 진행하거나, 의사 이름만 사용하고 간호사에게 마취를 시키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뿐만 아니라 요양급여 청구 과정까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수술에 참여하지 않아도 ‘무방한’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다.
김재환 이사장은 “외과의사가 간호사에게 마취를 지시해도 의사가 마취료를 청구하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한 경우와 동일한 마취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추후 요양급여 청구시에는 마취 당사자가 아닌 병원장이 청구해도 상관없는 실정”이라며 “이에 전반적으로 법과 제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