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형병원 소속 마취통증의학과 의료진의 대거 이탈 사태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필수의료 핵심인 수술실 마취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병원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소재 빅5 병원 중 한 곳인 상급종합병원에서 한 학기동안 5명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병원을 떠났다.
뿐만 아니라 인근 대학병원에서도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2명이 사직하는 등 수술실을 등지는 마취과 의사들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중증, 응급, 분만, 소아진료 등 필수의료 살리기에 팔을 걷어 부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던 수술실 마취에 빨간불이 켜진 형국이다.
특히 마취과 의사들의 수술실 이탈은 이미 예견된 문제로, 향후 그 인원이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측면에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마취과 의사들이 열악한 수술실 마취를 포기하고 미용·통증 분야 등 개원가로 향하고, 남은 이들은 과로에 시달리다가 사직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이 심화되면 결국 수술이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이는 긴급수술 및 암(癌) 등 국민들 건강과 직결될 수 있다.
실제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지난해 마취과 전공의 4년차 2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상황이 예견됐다.
젊은의사들은 전문의 취득 후 진료현장에서 기피하는 분야로 ▲심장마취 22% ▲소아마취 18% ▲중환자의학 12% ▲산과마취 11% ▲폐마취 11%를 지목했다.
필수의료 영역인 심장 및 소아, 중환자, 분만 등의 수술실 마취를 기피하면서 수술대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분만 및 소아마취 분야는 이미 붕괴가 시작된 상황이다. 분만 특성상 24시간 대기가 일상이고, 무과실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이 빈번해 마취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기피 0순위다.
또한 저출산 여파로 소아마취를 경험하고 수련할 기회가 부족해지면서 전문의 육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마취과 전공의들도 고난도 마취 분야를 기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취에 인색한 제도 역시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건강보험 마취료 원가보전율은 72.7% 수준으로, 병원의 인적·물적 투입을 고려하면 실제는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1/7, 미국은 1/23 수준이다.
즉, 마취과 의사들이 마취를 할수록 병원에 손해를 끼치는 구조 탓에 병원은 전문의 채용을 꺼리고, 남은 이들은 업무 과로에 시달리다가 사직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마취과학회 고위 관계자는 “마취과 의사들의 줄사표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중증·응급 등 필수의료 분야 수술에 마취과 의사가 줄어드는 상황에 진중한 천착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그는 이어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마취공백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라면서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강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