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야심차게 추진 중인 정부 의료개혁이 오히려 필수의료 붕괴에 가속도를 붙이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일명 ‘바이탈(vital) 진료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의 진료현장 복귀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해당 진료과목 교수들의 이탈까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필수의료 붕괴가 이미 시작됐다”며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필수의료를 포기하면서 밖에서 보는 것 보다 현장은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를 전했다.
실제 최근 순천향대 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마지막 남아 있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사실상 센터 기능이 멈춰 섰다.
지난 2016년 국내 최초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로 지정받아 주목을 받았고, 충남 전체를 관할하며 총 7명의 전문의가 소아응급실을 지켰지만 이들 모두 현장을 떠났다.
경기도 소재 A대학병원의 경우 최근 산부인과 교수 2명이 연이어 사직하면서 외래진료가 전면 중단된 상태다. 병원 측은 대체인력 수급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지원자가 없는 상황이다.
서울 소재 B대학병원은 심장내과 교수가 사직 후 중소병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C대학병원 병리과 교수는 바이오 업체 대표직을 수락하며 병원을 떠났다.
서울 빅5 병원 중 한곳의 소화기내과 교수도 8월말 병원을 떠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현재 사직서 수리를 기다리고 있거나 사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 교수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목할 점은 사직 교수들 대부분이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는 물론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한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던 정책이 오히려 필수의료를 죽이고 있다”며 “정부가 작금의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는 게 더 우려스럽다”고 개탄했다.
전공의 복귀 기피현상은 필수의료 분야의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11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에 출근한 전공의는 1025명으로, 전체 전공의 1만3756명 중 7.5% 수준이다.
진료현장에 복귀한 전공의는 지난달 30일 874명에서 최근 정부가 행정처분 중단을 발표한 이후 1000명을 넘겼지만 이후 복귀 전공의 수는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특히 정부 발표 이후 복귀한 전공의 중 필수의료 분야 레지던트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하거나 전공과목 변경을 계획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교수들의 한숨은 날로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공의들 사이에 필수의료 분야는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자리잡은 것 같다”며 “이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먹먹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의대 증원으로 인기과가 포화 상태가 되면 필수의료 분야로 넘어올 것이라는 낙수효과 논리는 필수의료에 종사 중인 의사들마저 떠나게 만드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필수의료 붕괴도 문제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는 정부는 더 큰 문제”라며 “이대로 가면 의료개혁이 아니라 의료붕괴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