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에 이사회 구성 변경과 재정 투명성 제고를 요청하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요청은 의평원에서 대한의사협회 비중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비치면서 의료계는 "평가 인증을 통과하기 위해 대학이 아닌 의평원을 압박"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政 "중립성‧공정성 평가인증 위해 의사 편중된 이사회 구성 다양화 필요"
醫 "정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7월 이사회서 논의"
5일 의료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올해 초 의평원을 의학교육 평가인증 인정기관으로 재지정하며 의평원 이사회에 환자 등 소비자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할 공익대표를 참여시킬 것을 권고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지난 4일 의대 교육 관련 긴급브리핑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업무 수행을 위해 의평원은 의사로 편중된 이사회 구성 다양화와 재정 투명성 등을 포함, 운영상의 적절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이미 요청한 사항을 신속히 이행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공익대표와 소비자단체 대표가 참여해 의학교육 방향과 질(質) 관리에 관해 논의하는 체계로 바꿔 나가고자 의평원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재 의평원 이사회는 22명으로 구성됐다. 정부 대표와 교육·언론·법조계 각각 1명씩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당연직 이사가 의료계 인사로 채워져 있다. 이 중 의협 임현택 회장, 강대식 상근부회장, 이우용 부회장 등 의협 집행부 인사들이 6명이다.
안덕선 의평원장은 데일리메디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권고할 당시 충분히 가능한 지적이라고 생각을 했고 적극 논의하겠다고 답했다"면서도 "다만 교육부가 우려하는 것처럼 이사회가 평가인증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사회는 1년 중 2월과 7월 두 차례 열리는데, 평가인증 결과가 1월초 발표돼 이사회 입김이 들어갈 구조가 전혀 아니라는 설명이다.
안 원장은 "이사회에서 평가인증 결과를 승인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 과정이 걱정된다면 기우(杞憂)가 아닌가 싶다"며 "외부에서 보기에 이사회 구성이 너무 한쪽에 쏠려 있어 걱정된다면 충분히 이사회에서 논의할 수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政 "의협 등 예산 지원 기관으로부터 독립성 확보해야"
醫 "의협 이사들이 의평원 좌지우지 안하는 것 정부도 이미 알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의협과 대한병원협회 등이 지원하는 의평원 예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4일 브리핑에서 "평가의 공정성·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의협, 대한병원협회 등 예산 지원 기관으로부터 독립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평가인증 회계를 (일반 사업회계와) 분명히 분리해서 투명하게 운영해달라고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의평원의 예산 중 약 20%는 의협이, 약 5%는 병협이 지원하고 있으나, 약 50%는 평가 인증비로 충당하고 있다.
안 원장은 "의평원 자체가 의료계가 자발적으로 구성한 단체고, 구성 당시 의협이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다"며 "예산 지원에 대해 공정성을 문제 삼는다면, 의협말고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서 예산을 많이 주게 됐을 때도 문제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의협의 영향력이 크다면)의협 이사들이 이사회에서 의평원 사업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했어야 하지 않냐"며 "이사회 회의록을 복지부에 계속 보고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재정에 대해 권고한 것은 평가인증 회계와 일반 사업회계를 구분해서 표기하라는 것뿐"이라며 "그간 예산 규모가 작아 합쳐서 했는데, 불투명하다면 구분해서 표기만 하면 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의평원 관계자도 "의평원 재정은 투명하다"라고 강조하며 "정부가 볼 때는 의협의 입김이 세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의협 측 이사 수를 줄이라는 뜻 아니겠나"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의평원은 규정대로, 정해진 대로 할 것이다"라며 "정부가 의대 교육의 질을 안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교육현장에 투자를 하고 이를 독려할 일이지 의평원을 걸고넘어지는 것 자체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政 "의평원장 근거 없는 의학교육 예단, 불안감 조성 우려"
醫 "의과대학 교수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우려 표명"
오석환 차관은 4일 브리핑에서 "의평원장이 의학 교육의 질 저하에 대해 근거 없이 예단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며 안 원장에 경고하기도 했다.
안 원장은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 발표 이후 다수 인터뷰를 통해 증원에 따른 인력‧시설 확충에 대한 지원이 미비할 경우 의대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지속 우려했다.
안 원장은 정부 지적에 "의대 교수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우려를 표명한 것일뿐"이라며 담담하게 답했다.
그는 "정부가 지원을 해달라고, 그리고 준비하고 있는 것을 좀 알려서 걱정되는 부분들을 해소시켜달라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증원을 2월에 발표했는데 지금도 예산 지원안이 명확히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오석환 차관은 4일 '의대 증원과 관련된 예산 마련은 어느 단계까지 진행 중인가'라는 질문에 "예산은 논의 과정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해드리기 어렵다. 기재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9월에는 예산까지 포함된 의학교육 선진화 방안을 준비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안 원장은 적정 교수 수에 대한 정부 설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현재 전체 의대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평균 1.6명으로 법정 기준인 1인당 8명보다 매우 낮으며, 정원을 5000명으로 증원해도 교원 1인당 평균 학생 수가 2.5명으로 늘어 굉장히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안 원장은 "'교수 1인당 학생 8명'이란 교수 채용 기준은 1996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30년 전에 만들어진 구닥다리 기준으로 2024년에 교수가 충분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맞나. 황당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생각하는 예산 지원 규모가 지금까지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예산이 확보되더라도 새 건물을 지으려면 업자 선정하고, 설계하고, 착공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 없다"며 "의평원은 이미 공표된 기준에 따라 공정히 평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