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국 수련병원에 오늘(17일)까지 전공의 결원을 확정하라고 요구했지만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무응답으로 일관, 대다수 수련병원들은 사직 처리를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요구 미이행 시 불이익을 경고한 정부와 사직서 일괄처리를 비판하는 의료계 사이에서 수련병원들의 난감한 상황만 지속되는 형국이다.
"복귀자 있나고요? 병원 메시지에 응답한 전공의가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들이 올해 초 사직 의사를 표명한 전공의들에게 최종 복귀 의사를 묻는 메시지를 보낸 결과, 지난 7월 15일까지 극소수 전공의만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빅5 병원인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은 구체적인 응답률을 밝히지 않았으나, 삼성서울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약 520명 중 7명만 돌아오는 등 복귀자는 한자릿수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거점 국립대병원들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부산대병원은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185명 중 대부분이 병원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복귀자도 없다.
충북대병원은 전공의 114명 중 112명이 복귀하지 않았고, 충남대병원은 전공의 245명 중 5명이 복귀하고 4명이 사직 처리됐으며 나머지 236명은 미복귀 상태다.
전북대병원은 156명 중 7명이 근무 중이고 나머지 전공의 대부분은 무응답 상태며, 전남대병원 역시 전공의 231명 대부분이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경북대병원, 부산대병원 역시 거의 모든 전공의들이 무시했으며 경상국립대병원은 163명 중 8명 복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동아대병원(107명), 아주대병원(150여명), 영남대병원(130여명),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150여명), 울산대병원, 조선대병원(96명), 중앙대병원(165명) 등 주요 수련병원 전공의 가운데서도 응답자는 없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5일 정오 기준 전체 211곳 수련병원 전공의 출근율은 전체 8.4%에 해당하는 1155명에 그쳤다. 이달 12일 대비 추가 복귀자는 44명 밖에 안됐다.
병원계 "복귀는 요원, 전공의 없는 병원 운영방안 찾을 수 밖에"
이에 따라 수련병원들은 아직 사직 처리를 진행하지 않았고 사직서 수리 시점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사직서 수리 시점에 대해 정부는 모든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철회한 지난 6월 4일 이후를 원칙으로 고수했지만, 전공의들은 금년 2월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서울대병원은 지난 16일 오전 소속 전공의들에게 '사직 합의서'를 보내 사직서 수리 시점은 7월 15일로 하되, 효력은 2월 29일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안내했다. 이를 통해 내년 3월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는 사직 전공의들이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 합의서에는 병원과 전공의 측 모두 그간 손실에 대한 책임 묻지 않기로 합의하는 내용도 담겨, 향후 법적공방을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 수련병원은 16일 오후에도 "내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A수련병원 관계자는 "한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장 간 논의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통일된 방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B수련병원 관계자는 "병원 내 분위기는 냉랭하다"며 "현재로써는 전공의가 없는 형태로 병원 운영을 지속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그냥 다 눈 감아 줄 테니 돌아오라'는 것은 복귀 명분이 안된다. 하반기에도 전공의들 복귀는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의대 교수들 "정부 사직 처리 요청은 강요할 수 없는 행정지도"
전공의 사직 처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 속에 의대 교수들은 수련병원장들에 "일방적인 사직 처리를 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와 수련병원 교수 대표들은 16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사직서 처리 및 수리 시점 등은 일방적으로 결정될 것이 아니라 개별 소속 전공의들과 충분한 논의 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들은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사직 처리 관련 공문은 행정절차법 제2조 제3호에 규정된 '행정 지도'에 불과한 것으로 부당하게 강요될 수 없고, 따르지 않았다고 불이익 조치를 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의 부당한 행정지도를 따를 것이 아니라 '전공의 권리를 보호하고 환자 안전과 우수 의료인력 양성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전공의법 제1조에 충실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 과정 '꼼수'를 따르다가 자칫 소속 전공의들을 수련병원에서 더 멀어지게 함으로써 필수의료 몰락으로 이어지는 패착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