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장기화에 따른 응급실 파행 소식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의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교육부가 소재한 세종시도 응급의료에 빨간불이 켜졌다.
‘필수의료 강화’를 기치로 내걸었던 의과대학 증원 정책이 역설적으로 지역의료, 응급의료 공백을 키우며 정책을 주도했던 정부부처 공무원과 가족들까지 유탄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병원계에 따르면 세종충남대학교병원은 세종시, 대전시, 충청남도 등에 의료진 공백에 따른 응급실 진료제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데일리메디가 확보한 해당 공문에 따르면 세종충남대병원은 오는 8월 1일부터 매주 목요일 부분적으로 응급실을 폐쇄한다.
세부적으로 8월 1일과 15일은 오전 8시부터 익일 8시까지 24시간 동안 응급실이 멈춘다. 8월 22일, 29일은 오후 6시부터 익일 8시까지 진료를 하지 않는다.
최근 속초의료원과 순천향대천안병원 등 응급실 파행 운영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청사가 위치한 세종시도 응급의료 대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사실 세종충남대병원은 지역 응급의료 사수를 위해 매년 45억원 정도의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응급실을 운영해 왔다.
가뜩이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전문의 사직에 따른 의료진 부족 사태까지 직면하면서 불가피하게 응급실 진료제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중심으로 응급실을 운영해오던 세종충남대병원의 진료제한은 전문의들 이탈이 심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신생 병원인 세종충남대병원은 그동안 전공의 없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응급실을 지켜왔지만 이번 의정 갈등 사태로 의료진 퇴사가 잇따르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3월 채용 예정이었던 응급의학과 전공의 4명이 임용을 포기할 때까지만 해도 큰 지장이 없었지만 최근 야간당직을 책임지던 계약직 전문의들이 잇따라 사직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는 성인응급 12명, 소아응급 7명 등 총 19명의 의료진이 근무하고 있었지만 최근 계약직 의사들 연이어 이탈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성인응급의 경우 불가피하게 진료제한를 결정했고, 소아응급은 기존 7명의 의료진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정상 운영된다.
병원 관계자는 “조속한 의료진 채용을 통해 응급실 진료 정상화에 나설 계획”이라며 “일단 8월 한 달 진료제한 조치 후 채용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의정 사태 이후 응급의학과 의료진 이탈이 잇따르면서 응급실의 ‘365일 24시간’ 원칙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응급의료 담당기관 중 최상위에 속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들까지 진료 제한에 나서면서 정부는 다른 진료과 인력을 투입하는 방안을 제시할 뿐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44곳 중 10여 곳은 폐쇄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 이탈에 이어 격무에 지친 전문의들도 사직하면서 중증응급환자 최후의 보루인 권역응급의료센터들도 정상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 절반이 사직서를 내면서 이날부터 응급의료센터 운영이 부분 중단된 상태다.
강원 도립 속초의료원도 응급실 전문의 5명 중 2명이 그만둬 이번 달부터 응급실을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단국대병원 응급실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6명 중 1명이 병가를 내면서 비상운영 체계에 돌입했고, 국립중앙의료원마저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 중 1명이 퇴사를 앞두고 있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는 “힘겹게 현장을 지키던 의료진이 이탈하면서 응급실이 정상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응급의료 붕괴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응급실 파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특히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이 무너지면 지역 의료전달체계가 붕괴하고, 이는 전체 응급의료체계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