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의 최전선인 전국 응급실이 인력 부족 등으로 심각한 운영난을 겪는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윤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인력부족 등으로 응급실 병상을 축소한 곳은 지난 2월 23일 6곳에서 7월 31일 24곳으로 증가했다.
반면 응급실 내원 환자는 지난 2월 58만 여명에서 3월 46만 여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늘어 지난 7월 55만여 명으로 집계돼 응급실 과밀화가 다시금 문제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사명감으로 버티던 응급실 전문의들이 의료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체력적 한계 및 심리적 피폐감에 휴직 또는 사직하고 있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8월부터 매주 목요일 응급실 진료를 중단하거나 축소 운영하기로 했으며, 충북대병원은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이 각각 휴직과 병가를 내며 당직근무 체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한람대강남성심병원 응급실도 전문의 6명이 근무 중이었는 최근 한 명이 사직했으며 추가적으로 한 명이 떠날 예정이어서 수도권마저도 위기가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달 초부터 대구 한 요양병원에서 당직의사로 근무 중인 사직 전공의 박모씨는 최근 '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 종합상황판' 자료를 공유하며 "대학병원들이 의료진 부족으로 야간 전원을 거부하고 있다. 이제 응급실 뺑뺑이가 일상이 됐다"고 알렸다.
박씨가 공개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대구지역의 경북대병원 12개 진료과, 계명대동산병원 11개 진료과, 대구가톨릭대병원 13개 진료과, 영남대병원 15개 진료과, 칠곡경북대병원 13개 진료과가 야간에 일부 또는 전체 응급진료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게시했다.
부산권의 동아대병원, 부산대병원, 인제대해운대백병원, 인제대부산백병원, 고신대복음병원 역시 다수 진료과가 야간 응급진료가 불가하다고 알렸다.
한 지역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의료진 부족과 더불어 배후진료 의사 역시 부족해 응급진료에 차질이 있다"면서 "인력을 더 확보하고 싶지만 지역에서 전문의를 구하기 정말 힘들다. 대부분 지역병원이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전했다.
"응급실 일부만 축소돼, 이탈 원인은 돈" 등 정부측 발언에 의료계 낙담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정부는 전국적 공통 현상이 아닌 일부 병원 응급실의 문제라는 입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상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차장(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2일 오전 중대본 회의를 열고 "최근 일부 응급의료기관에서 일시적으로 진료 제한이 발생하였으나 현재 정상 진료 중이거나 조속히 정상화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통령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도 지난 20일 "최근 의료계 집단행동 영향으로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부분적으로 진료제한이 있었던 기관은 1.2% 수준인 5곳"이라며 "응급실이 완전히 마비된 게 아니라 일부 기능이 축소된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29개 응급의료권역마다 최소 1곳 이상 권역 또는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진료 제한 없이 운영되고 있어 권역 내 일부 의료기관에서 진료 차질이 있어도 다른 곳에서 진료받을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앞서 지난 7월 순천향대천안병원의 응급실 의료진이 이탈하며 정상운영이 어려워졌을 때도 대통령실 관계자가 "우려할만한 일이 아니"라고 발언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국민 생명을 뒷전으로 생각하는 처참한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의료 체계 붕괴에도 '정신승리'식 발언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자기기만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에 더해 최민호 세종시장은 지난 19일 세종충남대병원의 응급실 진료 축소 운영과 관련해 "세종충남대병원 의사 인건비가 3억7000만원 수준인데 다른 병원에서 4억원이 넘는 보수를 제시하니 옮긴 것"이라며 응급실 운영난의 원인을 처우 문제로 몰아갔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고군분투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모욕을 주는 발언"이라며 "지자체장이 공개 석상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급여를 거짓으로 과장하고, 이를 통해 응급의료 위기가 마치 의사들의 탓인 양 호도했다"고 힐난했다.
빅5 병원 A교수는 "여전히 이번 의료사태에 대해 일부 의료인의 반발 내지 밥그릇 싸움이라고 보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며 "지난 6개월간 수없이 외쳤지만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아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라고 낙담했다.
한편, 지난 19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한 의료분쟁 관련 토론회에서 한 법조인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현상은 의료가 많이 영리화됐기 때문"이라고 발언하면서 토론회에 참가한 의료인들이 격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