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나는 권역응급센터에서 혼자 근무한다. 여기는 하루 육십 명 정도를 진료하는 서울 한복판의 권역센터다. 그리고 듀티(당직)마다 의사는 나 혼자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화여대목동병원의 남궁인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의 응급실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의사 겸 작가로 잘 알려진 남궁 교수는 연합뉴스에 "전공의 선생님들이 다 나가서 아무도 없다"라며 "전문의도 나가서 현재 8명이 남았는데 그중 한 분은 노(老)교수님이시라 야간 당직은 못 서신다"고 상황을 전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상급종합병원이나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가운데 중증 응급환자 치료를 위해 정부가 정하는 의료기관으로, 의료 공백 사태 이후 야간에는 중증 환자를 사실상 혼자서 진료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궁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현재 의료 체계는 시한폭탄"이라며 "아득바득 막아내는 내 존재가 시한폭탄을 그대로 증명한다"고 적었다.
그는 의료진 부재에 따른 최근의 '응급실 뺑뺑이' 사례도 알렸다.
남궁 교수는 "얼마 전 한밤중에 서울 한복판에서 교통사고가 나 젊은 환자의 팔다리가 터져나갔고 혈압이 떨어진다고 했다"며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병원에서 거절당했다고 했다기에 수용해서 살렸다. 현재 우리나라는 (치료할 곳이 없기에) 팔과 다리가 터지면 안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상위 (의료)기관일수록 인력이 이탈해서 응급실이 문을 닫고 있다"며 "그러면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쏟아지고, 다시 그 병원도 문을 닫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며칠 전부터 우리 병원도 밤 근무 결원이 생겼다. 나 하나만 추가로 출근하면 응급실이 돌아가기 때문에 추가 근무에 자원했다"며 "어제(22일)는 당직표에 없던 날이지만 출근했고, 출근하자마자 부천 화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중환자를 살렸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부천 중동의 한 호텔에서 벌어진 화재를 말한 것으로, 이 화재로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올해 초 디스크가 터졌고, 최근에는 한쪽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남궁 교수는 "한 달도 못 버틸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의료 공백이) 6개월이 넘었다"며 "이 붕괴는 확정되었다. 일말의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일부러 지금 이 업무에 자원할 응급의학과 의사는 농담 같은 존재"라며 "구급차는 지역을 넘어 뺑뺑이를 돌고 의료진의 번아웃(소진)은 일상이 됐다"고 전했다.
남궁 교수는 그러잖아도 바쁜 응급실인데 7개월째 이어지는 의료 공백에 코로나19 재유행까지 겹쳐 상황이 더 열악해졌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는 여전히 아픈 병인데 그들을 입원시키는 일은 이제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누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격리 지침도 사라졌고 수가(의료 서비스 대가)도 없어졌다"며 "코로나 환자를 그냥 다른 환자 옆에 입원시켜도 되는가? 상식적으로 안 된다. 이전처럼 격리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응급실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고충도 전했다.
남궁 교수는 "혈당 조절이 잘되지 않는다는 고령의 환자를 받았는데 인지 기능이 떨어져 있었지만, 수치가 나쁘지 않아 입원할 필요가 없었다"며 "보호자에게 반드시 입원 안 해도 되니까 모시고 귀가해도 된다고 했더니 내 눈앞에서 핸드폰을 열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눈앞에서 자신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경험한 적 있는가? 아무리 정신 나간 자가 하는 행동이어도 대단히 모욕적"이라며 "응급실이 터져나가는 와중에 경찰이 와서 그의 하소연을 들었고, 나를 조사했다. 정말이지 평정심으로 일할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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