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6개월을 넘어서면서, 사태 초반 적극적인 투쟁 행보를 보였던 교수 단체들도 최근 운신의 폭이 줄어든 모양새다.
정부가 기존 입장을 장기간 고수하며 교수들이 '포기 모드'로 진입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가운데 오는 9월 수시모집을 앞두고 목소리가 결집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지역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A 교수는 데일리메디에 "최근 들어 교수들 활동을 독려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의료대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교수들도 지칠 대로 지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대표적인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전의비) 뿐만 아니라 각 대학 교수협의회 및 비대위까지 지난 6개월간 쉴 틈 없이 행보를 이어왔다.
집단 사직서 제출을 비롯해 피켓 시위, 각종 성명과 입장문, 궐기대회, 토론회, 기자회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이와 비교하면 최근 분위기는 잠잠하다.
A 교수는 "교수들이 지치는 것을 정부가 기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은 희망이라도 보여야 동력도 생길 텐데 정부가 요지부동인 상황에 교수들 분위기가 침체된 것 같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수도권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인 B 교수도 "교수들이 호소할 것은 다 했는데 정부가 정말 어쩌려고 계속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교수들이 6개월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지금은 잠시 관망하고 있지만, 순응한 것이 아니라 정부 행태가 어이가 없어서 좀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는 오는 9월 초 의료개혁안 및 의대교육 선진화 방안 등 굵직한 계획 발표를 예고했으나, 이에 대한 교수들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B 교수는 "정부가 그간 얘기한 것을 어떻게 포장해야 근사하게 보일지 고민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그것으로 여론을 계속 유지하면 전공의나 학생들이 포기하고 복귀할 것이며 그러면 정부가 원했던 대로 다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전의교협 "수시모집 시작 주요 기점될 것, 목소리 낼 시기‧방식 고민"
B 교수는 이어 "결국 문제의 근원인 의대 정원을 흔들어 놓고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을 말도 안 된다. 아직 수시 접수가 시작되기 전인 만큼 혼란을 줄이려면 지금이라도 원래대로 해놓고 제대로 의사 수를 추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의교협 관계자도 "9월 수시모집이 시작되기 전에 교수들이 목소리를 크게 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국회 연석청문회도 있었고, 국회동의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등 대국민 홍보활동에 집중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이번 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방문부터 시작해서 향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의교협과 전의비 등 교수들은 오는 27일 의대 정원 배정심사위원회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아 공공기록물관리법을 위반한 혐의로 교육부 장‧차관을 공수처에 고발할 예정이다.
전의교협 관계자는 "교수들이 목소리를 낼 시기와 방법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으며, 현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꺾인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의대 증원과 관련한 소송 진행 등 숨 가쁘게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다.
의대교수비대委 "국정조사 통해 의료사태 조사하고 책임자 처벌"
전의비도 지속 온라인 총회를 열며 각 대학 교수 비대위와 현안을 논의하는 가운데 26일에는 입장문을 내고 재차 정부를 규탄했다.
전의비는 "정부의 무모하고 독단적인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은 대한민국 의료계 전반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며 "실직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대한민국 의료붕괴를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정부가 전공의 임용과 전문의 자격시험 기준을 필요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법안을 입법예고한 것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원인인 의대 증원을 중단하지 않고 각종 편법을 동원해 교육과 수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이름뿐인 전문의를 양성하려 한다"고 힐난했다.
이어 "불충분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진료 현장에 투입된다면 오진과 의료사고 위험이 크게 증가할 것이며, 이는 곧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과 다름 없다"면서 "정부는 즉각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국회 역시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부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며 "의료정책 졸속 추진과정, 법적 문제가 있는 가이드라인 발표의 책임 소재, 의료계와의 소통 부재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이를 통해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