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붕괴 우려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정부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군의관과 공보의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진료현장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큰 모습이다.
앞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학병원에 수 차례 군의관과 공보의를 파견했지만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만큼 이번에도 정부의 요식행위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히 현장 경험이 부족한 군의관이나 공보의를 응급환자 진료에 직접 투입하기는 어렵고, 의료사고 등 법적 부담으로 적극적인 진료를 기대하는 것도 힘들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오늘(4일)부터 응급실 운영에 차질이 생긴 대학병원에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253명을 순차적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파견 대상은 강원대병원(5명), 이대목동병원(3명), 세종충남대병원(2명), 충북대병원(2명) 등 의료진 부족으로 응급실 정상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병원들이다.
오는 5일부터 응급실 축소 운영에 들어가는 아주대병원에도 3명의 군의관이 파견되고, 충주의료원에도 공보의가 배치될 예정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의료진 인력 부족과 피로감 누적이 일상화되면서 응급실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며 “응급의료 정상화를 위한 추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진료현장 "응급의학 전공 아닌 군의관 등, 직접적으로 응급환자 보기 힘들어"
하지만 정작 의료현장에서는 군의관과 공보의 배치에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응급의학과 전공이 아니면 응급실에 파견되더라도 직접적으로 응급환자를 진료하기는 역부족인 만큼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배치되는 군의관이 응급의학 전공이 아니라면 의료공백 메우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일반의가 대부분인 공보의는 더하다”고 말했다.
이어 “타 전공과목 군의관이나 공보의가 배치돼도 인턴이 하는 정도의 업무에 국한될 게 자명하다”며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데 이들을 교육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배후 진료과와의 호흡도 걱정이다. 지금도 응급실에서 배후 진료과로의 환자 이첩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군의관과 공보의는 협조를 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다.
또 다른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다양한 질환으로 내원하는 응급환자 치료를 위해서는 다른 진료과와의 호흡이 중요하지만 파견 신분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후 진료과도 인력이 없어 환자를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짙은 상황에서 같은 소속도 아닌 파견인력이 배후 진료과 의료진을 설득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의관과 공보의 배치 무용론에 대한 경험도 회의적인 분위기의 원인 중 하나다.
앞서 정부는 의료대란 사태 이후 여러 차례 군의관과 공보의를 대학병원 등에 파견했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의료진 업무 부담을 줄여주지 못했다는 비판 일색이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장은 “영상의학과 군의관이 파견된 적이 있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운이 좋아 외과계 군의관이 오더라도 적극적인 치료를 꺼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혹시 이들이 응급환자를 치료하다 문제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며 “경험이 부족한 공보의의 경우 의료사고 등에 대한 부담이 더 클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결국 군의관과 공보의를 대거 응급실에 배치한다고 해도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미미할 것”이라며 “응급실 정상 운영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각 병원은 환자 불편을 고려해 당장 응급실을 '셧다운'하지는 않고, 진료를 축소하면서 조금 더 버텨본다는 분위기이다.
전날 기준 건국대충주병원, 강원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등 3개 의료기관이 야간과 주말 등에 응급실을 단축 운영 중이다.
이대목동병원도 매주 수요일 야간진료를 제한 운영하고 있다.
아주대병원은 오는 5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인 금요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 심폐소생술 필요 환자 등 초중증환자만 받기로 했다.
양산부산대어린이병원은 소아응급실에서 호흡기 진료를 무기한 중단한다. 일과시간 이후와 주말·공휴일에는 초음파와 영상 검사도 불가능하다.
추석연휴에는 응급실 운영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연휴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있더라도 배후진료를 할 수 있는 인력이 평소보다 훨씬 줄어들기 때문에, 응급실 문을 열고도 원활한 진료가 제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은 추석연휴 기간 응급실 야간 운영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여의도성모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도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극히 일부 진료만 가능한 상황으로 배후 진료 차질 우려로 추가적인 진료 축소까지 검토 중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군의관이나 공보의가 응급실에서 인턴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책임 소재 문제 등도 여전해 응급실 정상화에는 큰 효과를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