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과 의사들의 잇단 수술실 이탈로 마취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일선 진료현장에서 마취과 의사들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양상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채용이 여의치 않은 중소병원이나 전문병원 등에서 수술을 위해 프리랜서 의사를 찾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자연스레 몸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병원계에 따르면 최근 수술실 마취를 담당하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1일 아르바이트 비용이 300만원을 넘어섰다.
통상 일반적인 대진의사 하루 비용이 100만원 안팎으로 형성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3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동안 진단, 수술, 입원에 이르기까지 영속성을 갖는 다른 전문과목과 달리 수술에만 관여하는 마취과 의사들의 하루 알바는 왕왕 있었지만 이 정도 몸값은 이례적이라는 평(評)이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마취과 의사들의 잇단 수술실 이탈 사태와 맥을 같이 한다는 분석이다.
올 상반기 빅5 병원 중 한 곳인 상급종합병원에서 한 학기동안 5명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병원을 떠나는 등 수술실을 등지는 마취과 의사들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중증, 응급, 분만, 소아진료 등 필수의료 살리기에 팔을 걷어 부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던 수술실 마취에 빨간불이 켜진 형국이다.
특히 마취과 의사들의 수술실 이탈은 이미 예견된 문제로, 향후 그 인원이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측면에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마취과 의사들 줄사퇴→남은 의사들 과로 누적→사직 악순환
마취과 의사들이 열악한 수술실 마취를 포기하고 미용·통증 분야 등 개원가로 향하고, 남은 이들은 과로에 시달리다가 사직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지난해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4년차 2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상황이 예견됐다.
젊은의사들은 전문의 취득 후 진료현장에서 기피하는 분야로 ▲심장마취 22% ▲소아마취 18% ▲중환자의학 12% ▲산과마취 11% ▲폐마취 11%를 지목했다.
필수의료 영역인 심장 및 소아, 중환자, 분만 등의 수술실 마취를 기피하면서 수술대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분만 및 소아마취 분야는 이미 붕괴가 시작된 상황이다. 분만 특성상 24시간 대기가 일상이고, 무과실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이 빈번해 마취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기피 0순위다.
또한 저출산 여파로 소아마취를 경험하고 수련할 기회가 부족해지면서 전문의 육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마취과 전공의들도 고난도 마취 분야를 기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술현장에서 마취과 의사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자연스레 몸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중소병원 원장은 “수술실 마취를 담당할 전문의가 없어 프리랜서를 활용한지 오래”라며 “모든 수술 스케쥴을 마취과 의사 오는 날에 맞추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나마 요즘에는 프리랜서 마취과 의사 섭외도 여의치 않다”며 “위험 부담이 큰 마취 대신 통증을 하려는 의사들이 늘면서 수술현장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병원 원장은 “수술은 해야 하는데 마취과 의사가 없어 걱정”이라며 “수술을 주력으로 하는 병원들로서는 너무 힘겨운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마취통증의학과 역시 전체 의사수 부족이 아닌 배치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며 “머지않은 시기에 수술대란이 현실화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최근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임원진을 만나 수술실 마취 위기 상황에 대한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박민수 차관은 중증‧응급환자 등 필수의료 분야 마취에 대한 보상 등 개선 대책 추진상황을 공유하고, 마취통증의학과 현장 애로 및 건의사항을 수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