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는 발언으로 의료계는 물론 야당으로부터 공분을 샀던 윤석열 대통령이 실제 야간에 응급실을 방문했다.최근 의료진 이탈로 대학병원 응급실이 잇따라 가동을 멈추면서 응급의료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행보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밤 경기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 중인 의정부성모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하고 필수의료 지원 강화를 약속했다.
지난 2월 의정갈등 이후 윤 대통령이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9번째로, 이날은 성태윤 정책실장과 장상윤 사회수석,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동행했다.
윤 대통령은 권역응급의료센터 상황을 둘러보고 의료진 등 병원 관계자와 만나 현장에서 겪는 고충과 건의사항 등을 경청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응급실 업무 강도가 높아 의료진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지만 수가 정책이나 의료제도가 현장 어려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응급·분만·소아·중증 등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이 공정하지 못했던 만큼 해당 분야 지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응급실 의료진 노고와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의료인의 법적책임에 따른 부담과 보상 공정성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응급의료 현장 방문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최근 응급실 붕괴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됐다.
대통령실은 당초 추석 연휴 전 윤 대통령의 응급실 현장 방문을 계획했지만 갑작스레 이날 일정을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응급실 위기론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의료현장을 한 번 가보면 비상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의료계의 공분을 샀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물론 대학병원 교수들도 일제히 대통령의 현실부정을 강하게 비난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의료붕괴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충격적”이라며 “과연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고,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힐난했다.
특히 “기자들에게 의료현장을 가보라고 얘기할 게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응급실에 가서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해 보길 권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응급의료 현장은 점점 기능을 잃고 있다. 건국대충주병원, 강원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순천향대병원, 이대목동병원 등은 응급실을 단축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아주대병원도 오늘(5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서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초중증 환자만 받기로 했다.
응급실 의사 부족으로 당직의사 혼자 근무를 서야 하는 병원은 25곳에 달하는 등 응급의료 붕괴가 현실화 되자 정치권의 의료현장 방문이 잦아지고 있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4일 오후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을 찾아 응급의료 현장을 점검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일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을 찾아 의료진으로부터 현장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한편, 이날 윤 대통령이 방문한 의정부성모병원은 경기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며 의정부, 양주, 동두천, 포천, 연천, 철원 등 경기북부 지역 필수의료를 담당하고 있다.
주변 지역에 노인인구 비율이 높고, 군부대도 있어 응급환자가 많은 곳이다. 연간 응급환자 수 6만명 정도로, 응급센터 내 병상 수는 59개 정도이며 응급실 담당의사 수는 19명이다.